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 )

고대사
작품
문화재
872년(경문왕 12), 황룡사 9층목탑을 중수할 때 창건 내력 및 중수 과정과 그것을 담당하였던 도속(道俗)의 인원을 기록한 통일신라의 사리함기.
이칭
이칭
황룡사구층목탑 사리함기
작품/조각·공예
창작 연도
872년(경문왕 12)
작가
박거물(朴居勿)
소장처
국립경주박물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15년 04월 22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내용 요약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는 872년(경문왕 12)에 황룡사 9층목탑을 중수할 때 창건 내력 및 중수 과정과 그것을 담당하였던 도속(道俗)의 인원을 기록한 통일신라의 사리함기이다. 보물 제1870호이다. 목탑의 중수가 완공된 후 창건 때 찰주 아래 봉안하였던 사리는 그대로이나 그 날짜와 연유를 적은 기록이 없어, 박거물(朴居勿)에게 명하여 찬술하게 하였고, 글씨는 구양순체로 유명한 서예가 요극일(姚克一)이 쌍구체(雙鉤體)로 썼다.

정의
872년(경문왕 12), 황룡사 9층목탑을 중수할 때 창건 내력 및 중수 과정과 그것을 담당하였던 도속(道俗)의 인원을 기록한 통일신라의 사리함기.
제작 배경

황룡사(皇龍寺) 9층목탑자장(慈藏)의 건의로 645년(선덕여왕 14)에 건립되었다. 탑을 세운 지 오래되어 문성왕(文聖王) 때 탑이 동북쪽으로 기울어졌고, 이후 30여 년간 재목을 모아 마침내 경문왕이 871년 동생인 상재상(上宰相) 김위홍에게 총책임을 맡겨 공사를 개시하였다.

황룡사 주1이 중수에 관한 행정 운영을 담당하였고, 도감전(道監典), 속감전(俗監典)주2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872년에 완공되었다. 주4 때 찰주 아래 봉안하였던 사리는 그대로이나 그 날짜와 연유를 적은 기록이 없어, 박거물(朴居勿)에게 명하여 9층목탑의 창건내력 및 중수 과정을 기록한 찰주본기를 주3하게 하고 만겁이 지나도 후세 사람들에게 드러나도록 이를 금동사리함기에 새겼다.

내용

찰주본기의 전반부는 9층목탑의 창건에 대한 것인데, 자장의 창건 연기, 탑의 규모, 건립 의의의 순으로 기술되었다. 후반부는 문성왕에서 경문왕에 이르는 중수 사실을 적었는데 중수 과정, 유물의 봉안, 창건 때 찰주 아래 봉안한 유물의 확인 및 유물의 추가 봉안 순으로 기술되었다. 끝으로 황룡사 성전의 관원을 비롯하여 중수 공사에 대한 승속의 전폭적인 후원을 이끌어 내었던 도감전, 속감전, 유나직(維那職)의 각 인원들을 기록하였다.

형태 및 특징

찰주본기를 새긴 사리내함은 금동판을 주5으로 연결하여 접으면 방형의 상자모양이 되도록 독특하게 고안되었다. 4면 중 전면에 해당되는 금동판은 양분하여 중앙에 잠금장치 역할을 하는 주6를 달고 내외에 신장상을 새겼다. 나머지 3면의 금동판 내외 총 6면에는 찰주본기를 새겼다.

금동판의 크기는 가로 23.5cm, 세로 22.5cm이다. 찰주본기의 글씨는 구양순체로 유명한 서예가 요극일(姚克一)이 쌍구체(雙鉤體)로 썼으며, 이를 주7한 이의 이름도 확인된다. 내면의 글자 크기는 약 1cm, 외면의 글자 크기는 0.8cm이며, 총 74행에 900자 이상의 글자가 판독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찰주본기를 통해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황룡사에 성전이 설치되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어 신라 성전의 구성과 운영 등 전모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 이를 통해 『 삼국유사』에 전하는 황룡사 9층목탑의 창건 내력이나 규모 등에 관한 기록이 상당히 신뢰할 만한 자료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단행본

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Ⅲ(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황룡사 유적발굴조사보고서』-Ⅰ(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4)

논문

이용현, 「황룡사 찰주본기의 재검토」(『신라문물연구』 11, 국립경주박물관, 2018)
이영호, 「신라중대 왕실사원의 관사적 기능」(『한국사연구』 43, 한국사연구회, 1983)
변선웅, 「황룡사구층탑지의 연구: 성전과 정법전문제를 중심으로」」(『국회도서관보』 10-10, 국회도서관, 1974)
황수영, 「신라 황룡사구층목탑 찰주본기와 그 사리구」(『동양학』 3,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3)
황수영, 「신라 황룡사 구층탑지: 찰주본기에 대하여」(『미술사학연구』 116, 한국미술사학회, 1972)
진홍섭, 「황룡사탑지 사리공의 조사」(『미술자료』 11, 국립중앙박물관, 1966)
주석
주1

정해진 법칙.    우리말샘

주2

승려와 승려가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글의 재료를 모아 저술함.    우리말샘

주4

건물이나 조직체 따위를 처음으로 세우거나 만듦.    우리말샘

주5

여닫이문을 달 때 한쪽은 문틀에, 다른 한쪽은 문짝에 고정하여 문짝이나 창문을 다는 데 쓰는 철물.    우리말샘

주6

문틀이나 창틀에 끼워서 여닫게 되어 있는 문이나 창의 한 짝.    우리말샘

주7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안으로 들어가게 새기는 일. 또는 그런 조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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