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皇龍寺) 9층목탑은 자장(慈藏)의 건의로 645년(선덕여왕 14)에 건립되었다. 탑을 세운 지 오래되어 문성왕(文聖王) 때 탑이 동북쪽으로 기울어졌고, 이후 30여 년간 재목을 모아 마침내 경문왕이 871년 동생인 상재상(上宰相) 김위홍에게 총책임을 맡겨 공사를 개시하였다.
황룡사 성전(成典)이 중수에 관한 행정 운영을 담당하였고, 도감전(道監典), 속감전(俗監典) 등 승속(僧俗)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872년에 완공되었다. 창건 때 찰주 아래 봉안하였던 사리는 그대로이나 그 날짜와 연유를 적은 기록이 없어, 박거물(朴居勿)에게 명하여 9층목탑의 창건내력 및 중수 과정을 기록한 찰주본기를 찬술하게 하고 만겁이 지나도 후세 사람들에게 드러나도록 이를 금동사리함기에 새겼다.
찰주본기의 전반부는 9층목탑의 창건에 대한 것인데, 자장의 창건 연기, 탑의 규모, 건립 의의의 순으로 기술되었다. 후반부는 문성왕에서 경문왕에 이르는 중수 사실을 적었는데 중수 과정, 유물의 봉안, 창건 때 찰주 아래 봉안한 유물의 확인 및 유물의 추가 봉안 순으로 기술되었다. 끝으로 황룡사 성전의 관원을 비롯하여 중수 공사에 대한 승속의 전폭적인 후원을 이끌어 내었던 도감전, 속감전, 유나직(維那職)의 각 인원들을 기록하였다.
찰주본기를 새긴 사리내함은 금동판을 경첩으로 연결하여 접으면 방형의 상자모양이 되도록 독특하게 고안되었다. 4면 중 전면에 해당되는 금동판은 양분하여 중앙에 잠금장치 역할을 하는 문비(門扉)를 달고 내외에 신장상을 새겼다. 나머지 3면의 금동판 내외 총 6면에는 찰주본기를 새겼다.
금동판의 크기는 가로 23.5cm, 세로 22.5cm이다. 찰주본기의 글씨는 구양순체로 유명한 서예가 요극일(姚克一)이 쌍구체(雙鉤體)로 썼으며, 이를 음각(陰刻)한 이의 이름도 확인된다. 내면의 글자 크기는 약 1cm, 외면의 글자 크기는 0.8cm이며, 총 74행에 900자 이상의 글자가 판독되었다.
찰주본기를 통해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황룡사에 성전이 설치되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어 신라 성전의 구성과 운영 등 전모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 이를 통해 『 삼국유사』에 전하는 황룡사 9층목탑의 창건 내력이나 규모 등에 관한 기록이 상당히 신뢰할 만한 자료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