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 출신. 호는 뇌허(雷虛). 아버지는 학수(學洙)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913년 상주동해사(東海寺)로 출가하여, 1914년 상주남장사(南長寺)에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16년 승려의 도첩(度牒)을 받고 상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에는 상주남명학원(南明學院)에서 사집과(四集科)를 수료하였다. 1923년김룡사(金龍寺) 지방학교를, 1928년 일본 릿쇼대학(立正大學) 전문부 종교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해 6월 경성실업전수학교의 교원이 되었다.
1930년 남장사에서 혜봉(慧峰)을 법사(法師)로 법맥을 이어받아 뇌허라는 법호를 받았다. 1932년 릿쇼대학 학부 종교과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뒤, 3년 동안 불교교리발달사를 연구하였다. 그리고 1936년릿쇼대학 전문부의 종교과 전임강사가 되었다. 1940년 귀국하여 김룡사에서 대덕(大德) 법계를 받았으며, 1941년 경상북도 오산불교학교(五山佛敎學校: 지금의 능인고등학교)의 교장에 취임하였다.
1941년 경성의 혜화전문학교 강사 겸 생도주사(生徒主事)에 취임한 이래 생도과장을 거쳐서 1943년에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1944년 조선불교 중앙포교사 및 조선불교 교학위원으로 취임하였다. 1947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된 이후 부학장·학장·대학원장, 불교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거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한편, 많은 저술을 남겼다. 동국대학교 외에도 서울대학교·성균관대학교·고려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여 불교전파에 힘썼다.
1946년 조선불교 법규위원 및 상벌위원, 1947년 조선불교 법계고시위원, 1952년 고등고시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62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70년 국민훈장동백장을 받았으며, 1972년 학술원공로상을 받은 뒤 학술원의 종신회원이 되었다. 특히, 세계적인 불교학의 연구를 학계에 정착시킨 공로자로서 후학들을 지도함에 있어서는 언제나 열과 성의를 다하였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불교학개론』·『삼국시대의 불교사상』·『선종사상사』·『불교교리발달사』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논문으로는 「불교의 호국사상」·「선종소의경에 대하여」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불교계에서는 그의 평소업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뇌허학술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