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수중(綏仲), 호는 동엄(東广).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의 김을동(金乙東)이고,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김문(金汶)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은(金銀)의 딸이다.
임진왜란 때 아우 김득상(金得祥)과 의병 60여 명을 모아 불국산(佛國山)으로 가서 이눌(李訥)과 합세하여 적을 대파하고 총통(銃筒) 20여 병(柄)을 노획하였다. 6월에 금오산(金鰲山)에서 적 400여 명을 참살하고 도창(刀鎗) · 조총(鳥銃) 27병을 노획하고, 7월에 영천에서 판관 박의장(朴毅長), 의병장 권응수(權應銖) 등과 적을 대파하였다.
1595년 2월 이눌과 밤중에 영지(影池) 아래에 주둔하고 있던 적을 수공으로써 격파하였다. 1597년 10월에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사진(四鎭)의 장수를 선발할 때 선발되어 수전에서 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1597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이어서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에 적록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603년(선조 36)에 임치진수군절제사(臨淄鎭水軍節制使)가 되고, 1605년에 삼남영장(三南領將)이 되었다. 저서로는 『동엄실기(東广實紀)』 2권이 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