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불국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며 절충장군에 임명된 의병장.
이칭
수중(綏仲)
동엄(東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1년(명종 16)
사망 연도
1626년(인조 4)
본관
김해(金海)
주요 관직
삼남영장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불국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며 절충장군에 임명된 의병장.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수중(綏仲), 호는 동엄(東广).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의 김을동(金乙東)이고,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김문(金汶)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은(金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아우 김득상(金得祥)과 의병 60여 명을 모아 불국산(佛國山)으로 가서 이눌(李訥)과 합세하여 적을 대파하고 총통(銃筒) 20여 병(柄)을 노획하였다. 6월에 금오산(金鰲山)에서 적 400여 명을 참살하고 도창(刀鎗)·조총(鳥銃) 27병을 노획하고, 7월에 영천에서 판관 박의장(朴毅長), 의병장 권응수(權應銖) 등과 적을 대파하였다.

1595년 2월 이눌과 밤중에 영지(影池) 아래에 주둔하고 있던 적을 수공으로써 격파하였다. 1597년 10월에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사진(四鎭)의 장수를 선발할 때 선발되어 수전에서 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1597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고, 이어서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에 적록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603년(선조 36)에 임치진수군절제사(臨淄鎭水軍節制使)가 되고, 1605년에 삼남영장(三南領將)이 되었다. 저서로는 『동엄실기(東广實紀)』 2권이 있다.

참고문헌

『동엄실기(東广實紀)』
『석주유고(石洲遺稿)』
『동경지(東京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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