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평안도관찰사, 대사헌,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산룡(山龍)
시호
공간(恭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12년(중종 7)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주요 관직
예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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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평안도관찰사, 대사헌,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산룡(山龍). 형조판서 김자지(金自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유(金攸)이고, 아버지는 김순신(金舜臣)이며, 어머니는 허추(許樞)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7년(성종 8)에 능참봉에 제수되었다. 1482년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88년 헌납(獻納), 정언(正言)이 되고, 이어 이조좌랑이 되었다. 1492년 장령(掌令), 1498년(연산군 4)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 등 요직을 거치는 한편,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0년 승정원좌부승지를 거쳐, 1502년 형조참판·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1504년 경상도절도사로 나갔을 때,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복위문제(尹氏復位問題)를 둘러싸고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후 다시 기용되어 지중추부사·평안도관찰사·대사헌 등을 역임하였고, 1510년(중종 5)에 다시 예조참판이 되었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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