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개성유수, 총융사, 한성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0년(숙종 6)에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아들 복창군(福昌君)과 복선군(福善君), 그리고 허적(許積)의 서자 허견(許堅) 등이 역모를 꾀하였다 하여 복선군과 허견 등은 주살되고 복창군과 허적 등은 사사(賜死)되었는데, 이 때 공을 세웠다 하여 가자(加資: 관직이나 품계를 올리거나 더함)되었다.
1683년에 한성우윤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개성유수를 거쳐 총융사(總戎使)가 되었다. 1686년 한성좌윤으로 있을 때 죽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한국당쟁사」(성낙훈, 『한국문화사대계』 Ⅱ,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6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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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품계 가자 : 『숙종실록』 10권, 1680년(숙종 6) 12월 2일. "사간원에서 이사명·신범화 등의 공신 추가 등록의 개정을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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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한성좌윤 재임시 사망 : 『숙종실록』 17권, 1688년(숙종 12) 2월 7일. "한성 좌윤 김석익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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