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출생. 호는 무돌.
1930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영국 런던대학에서 음성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전임강사로 취임, 1939년 조교수, 1940년 교수가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투옥, 1943년 기소유예로 출감했으나, 이 일로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제 해직되었다.
1946년 연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복직, 1947년에는 동교 문과대학장 서리를 역임하였다.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언어학과 주임교수로 취임하여 학과의 기틀을 잡았다. 1951∼1952년 서울대학교 교무처장 및 학생처장, 전국전시연합대학 교무처장을 역임하였다. 1952∼1953년에는 미국 코넬대학 교환교수로 가서 1년 간 언어학을 연구하였다.
1958년 문교부차관 취임으로 잠시 학계를 떠났다. 1960년 5월 관직에서 물러나 농장을 경영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1963년 자유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67년 명지대학 대학원장으로 취임하여 1972년에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되어 1988년까지 강의를 계속하였다. 1975년에는 명지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학회활동으로는 1930년에 조선어학회 회원이 되어 1931년 학회의 사전편찬원이 되었고, 1932년추가로 뽑은 한글맞춤법통일안 위원에 피선되어 1933년 「한글마춤법통일안」이 완성될 때까지 위원으로 일하였다. 1948년부터 1970년까지는 한글학회 이사를 역임하였으며, 1965년부터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를 지냈다. 한편, 1956년에는 한국언어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에 피선되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Phonetics of Korean(한국어음성학)』(1937)과 별세 뒤에 출판된 『옛적 노래의 새풀이-향가신석』(1993)이 있다. 음성학에 관한 논문들 외에, 1967년 향가의 새로운 풀이를 시작하여 14회에 걸쳐 『현대문학』에 발표하였으며, 향가해독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다. 1968년부터는 오랜 관심사였던 한국어계통론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1976년부터는 「가라말의 덜」이라 하여 한국어의 어원에 관한 논문을 18회에 걸쳐 『현대문학』에 발표하였다.
1978년에는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88년에는 월남장과 1993년 10월 9일 한글날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