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청문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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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1779년 학자 이담과 역관 김진하 등이 만주어를 한문과 한글로 풀이한 사전. 한어 · 만주어사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청문감』은 1779년 학자 이담과 역관 김진하 등이 만주어를 한문과 한글로 풀이한 사전이다. 목판본으로 된 15권의 유별(類別) 사전으로 청나라의 『어제증정청문감』(1771)을 대본으로 하여 편찬되었다. 이 사전의 만주어 어(구)의 총수는 1만 3,640여 개로 당시의 한어·만주어 연구와 18세기 우리말의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오늘날 동일판으로 추정되는 일본 동경대학도서관의 구 오구라 소장본과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 소장본의 2질이 전한다. 1956년 동경대학의 오구라본이 연희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한한청문감』이라 개제되어 영인되었다.

목차
정의
1779년 학자 이담과 역관 김진하 등이 만주어를 한문과 한글로 풀이한 사전. 한어 · 만주어사전.
내용

목판본. 15권의 유별(類別) 사전으로 청나라의 『어제증정청문감(御製增訂淸文鑑)』(1771)을 대본으로 하여 편찬되었다.

『증정청문감』은 본문 32권, 총강(總綱) 8권, 보편(補編) 4권, 보편총강 2권과 속입신어(續入新語) · 이차속입신어(二次續入新語) 및 십이자두(十二字頭)로 된 유별 사전인데, 이는 만만사전(滿滿辭典)인 『어제청문감(御製淸文鑑)』(1708)을 증정하고 한어(漢語)를 덧붙여서 만만 겸 만한(滿漢)과 한만(漢滿)으로도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한청문감』은 이 『증정청문감』을 우리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낱말을 덜고 동의어들을 한 표제 속에 합하며, 대다수의 표제어구를 한어로 개편하였다. 『한청문감』의 편찬형식을 보면, 범례의 대부분이 한어 표음의 설명이고, 대본인 『증정청문감』에는 만좌(滿左) · 한우(漢右)로 대등하게 나란히 있던 표제어(구)를 한어를 위에 놓는 등, 한어사전으로서의 구실을 중히 여긴 듯이 보인다.

그러나 『어제청문감』 이래의 장황한 만주어로 된 풀이를 한글로 전사하여 옮겨놓은 일이나, 주로 의성어 · 의태어의 경우지만 한어를 표제어로 하기가 마땅하지 않은 상당수의 낱말들을 만주어로 그 표제를 삼고 있는 점을 볼 때 여러모로 그 대본이 지니고 있는 청어위주적(淸語爲主的)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한청문감』은 청문감(淸文鑑)과 한문감(漢文鑑)의 구실을 다할 수 있도록 편찬된 책으로 보인다.

『한청문감』에는 간행연월일이 적혀 있지 않아 확실한 간행년을 알 수 없으나, 1771년 12월 24일의 서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는 1773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증정청문감』을 대본으로 하였으므로 1773년 이후가 될 것인데, 개편작업이 몇 년은 걸렸을 것이므로 오구라〔小倉進平〕는 『한청문감』의 간행년을 1775년경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민영규(閔泳珪)는 영인본의 해제에서 폭넓은 고증을 통하여 1779년경으로 추정하였다.

『통문관지(通文館志)』 권8 「집물(什物)」 속(續)에 1777년(정조 1)의 신석소아론판(新釋小兒論板)과 신석팔세아판(新釋八歲兒板), 그리고 1778년에 개판된 통문관지판(通文館志板)은 실려 있으면서 『한청문감』의 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점과, 이 책의 편찬에 주역을 한 김진하의 관력(官歷)과 행적 등을 감안할 때 1779년 이후 가까운 해에 출간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타당성이 있다.

『한청문감』은 오늘날 완질본 2질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 동경대학(東京大學)도서관의 구 오구라 소장본,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Bibliothe'que de l,E'coleNationale des Langues Orientales Vivan-tes) 소장본이 그것인데, 이 둘은 동일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1971년에 또 하나의 색다른 완질본이 박은용(朴恩用)에 의하여 소개되었다. 그것은 동경대학 법학부 연구실의 구 미야자키〔宮崎道三郎〕 소장본인데, 미야자키본은 7책으로 장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오구라본에서 볼 수 있는 권1 앞에 붙은 목록 10장과, 권15 끝에 있는 편찬관여자명단 3장이 없다. 그보다도 미야자키본의 문제점은 권1· 권2· 권10· 권12· 권13· 권15가 교정쇄(校正刷)로 짝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밖의 것은 오구라본과 같은 판본이다.

교정쇄 속의 교정지시는 고칠 곳을 줄을 그어 표시하고 판곽 위쪽 난상에 고칠 내용을 지시하고 있다. 이 교정은 제본 전에 인쇄지에 교정한 것인 듯 난상의 교정지시가 전부 또는 일부가 잘려나간 곳이 적지 않다. 교정지시가 있는 곳을 오구라본과 대조하여보면 오구라본은 거의 지시대로 고쳐져 있다.

박은용은 우리가 영인본으로 보아온 오구라본을 복각 중간본으로 보고 교정쇄본을 초간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구라본 원본과 교정쇄본을 대조해 보면 둘은 동일판본이다. 판의 특징이나 교정한 양상이 교정쇄본은 개간시(開刊時) 보각교정을 위한 교정쇄를 제본한 것 같다. 여하튼 교정쇄본은 『한청문감』 연구에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그 밖에 고려대학교 도서관 만송문고(晩松文庫)에 낙질본으로 권9· 권10· 권11· 권12· 권13· 권15가 전한다.

『한청문감』은 범례(凡例) 4장, 목록 10장, 본문(권1∼15) 924장, 편찬관여자명단 3장 등 총 941장으로 되어 있다. 범례를 보면 그 구성을 15권 36부(部) 287유(類)로 기재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저본인 『증정청문감』의 부 · 유의 유별과 꼭같이 정편(正編) 권1∼14가 36부 292유 565칙(則)이 되고, 여기에 권15에 수록된 보편 23유 36칙이 추가된다. 그런데 저본의 보편(4권)은 26류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전에 수록된 표제어(구) 항목의 총수는 1만2,840여 개가 된다. 여기에 만주말 풀이 끝에 붙은 한어 소표제어와 그 만주어 어(구) 200여항목과, 일운(一云)의 만주어 600여개를 합하면 『한청문감』 속의 만주어 어(구)의 총수는 1만3,640여 개가 된다.

각 항목의 기술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위 제1단은 한어(漢語) 표제어(구)인데, 각 표제어 머리에는 ㅇ표를 치고 있다. 단, 칙이 시작되는 곳에는 ㅇ표가 없다. 그런데 제1단 표제어(구)가 만주어인 경우도 있다. 표제 한어의 각 글자 오른쪽 아래에는 한글로 음을 달고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의 대본인 『증정청문감』의 표제 한어에 대한 만주자 표음을 한글로 전사하여 놓은 것이다.

제2단은 제1단의 표제 한어와 제3단의 만주어에 대한 우리말 풀이인데, 때로는 한문으로 제4단의 만주어로 된 풀이를 번역하여 놓은 것도 있다. 표제 한어가 우리말 한자어로 관용되고 있는 경우에는 그저 줄을 그어 놓았다.

제3단은 표제 한어에 대응하는 만주어 어(구)인데, 그 오른쪽에는 만주어음을 한글로 전사하여놓았다. 제4단은 제3단의 만주어에 대한 만주어 풀이이다. 이는 『어제증정청문감』의 만주어 풀이를 한글로 전자(轉字) 겸 전사하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본 그대로가 아니라 불필요한 말을 덜어서 축소시킨 것이다.

만주말 풀이 끝에는 가끔 표제어 (구)의 유의어 또는 파생어가 실려 있다. 한어 소표제어가 먼저 오고 그 밑에 한글로 전사된 만주어를 붙이고 있다. 때로는 제3단 만주어의 동의어가 ‘일운’이라 하고 붙어 있다. 이 한어 소표제어(구)와 ‘일운’이라 하고 붙인 것들은, 대본인 『증정청문감』에서는 별개의 항목으로 수록되어 있는 어(구)들이다.

흔히 보아 넘기기 쉬운 일은,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머리 표제어(구)가 한어가 아니고 만주어로 되어 있는 항목이 200여 항목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권7의 언론류(言論類)와 성향류(聲響類) 같은 곳에는 특히 만주어 표제어(구)가 집중되어 있다. 이것들은 주로 의성어 · 의태어들인데, 이에는 우리말 풀이는 없고 세자(細字)로 된 한문 풀이와 한글로 전자 겸 전사된 만주어 풀이만 붙어 있다.

『한청문감』이 만주어연구에 있어 특히 중요시되는 부분은 만주어의 한글 전사이다. 우리나라 사역원(司譯院)에서 출간된 청학서(淸學書)들의 만주어 한글 전사는 크게 2가지 종류의 전사법을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① 만주글자가 곁에 있고 그것을 한글로 전사하는 경우이고, ② 만주 글자 없이 한글로만 만주말을 적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전자와 전사를 겸한 표기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한청문감』에서는 제3단에서는 ①을, 제4단 만주어 풀이에서는 ②의 전자와 전사를 겸한 표기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청어노걸대』(1765) · 『삼역총해』(1774) · 『팔세아』 · 『소아론』(1777)의 만주어 한글 전사는 『한청문감』 제3단의 만주어 한글 전사와 같은 부류 ①에 속하는 것인데, 이 전사방법은 ‘간략 표음’을 그 전사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동문유해』(1748)는 『한청문감』 제4단의 경우와 같은 부류 ②에 속하는 것인데, ②는 ①의 전사방법에다가 만주문자로의 복원을 위한 방안을 가미한 것이다.

『한청문감』 제3단의 한글 전사에서 눈에 뜨이는 변화는 ①의 부류의 청학서에서 ‘ㅍ’으로 써오던 만주어 ‘f’ 의 전사를 ‘○’으로 바꾼 일이다. 그러나 ‘f ’를 ‘○’으로 적는 방법은 ②의 부류에서는 『동문유해』에서도 사용되어 온 방식이다. ②의 부류의 한글 전사를 검토함에 있어 유념할 일은 서로 간의 차이가 대개는 그 원전(原典)의 차이에 유래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만주어 속의 한어 차용어의 표기나 한어 인명 · 지명의 표기는 대음자식(對音字式)의 변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밖에 『한청문감』에서는 모음 전사에 변화가 오는데, 이는 『증정청문감』 만주어 곁에 붙은 만주어 음의 한자 절음(切音)에 유래하는 것이다.

『한청문감』은 당시의 한어 · 만주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18세기 우리말의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그 편찬방법과 각자(刻字)의 정교함은 그 시대의 문화능력을 우러러보게 한다.

이 책은 1956년 동경대학의 오구라본이 연희대학교(현재의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한한청문감(韓漢淸文鑑)』이라 개제되어 영인되었다. 이에는 민영규의 해제가 있다. 약간의 영인 착오가 있는데 박은용이 지적한 바 있다. 영인본의 색인이 같은 연구소에서 1960년에 만들어졌는데, 이 색인에는 ‘일운’ 등의 만주어 어구 800여 항목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참고문헌

『통문관지(通文館志)』
『어제증정청문감(御製增訂淸文鑑)』
『增訂補注 朝鮮語學史』(小倉進平, 刀江書院, 1964)
「한한청문감해제(韓漢淸文鑑解題)」(민영규, 『영인 한한청문감』, 연희대학교동방학연구소, 1956)
「이조중기이후의 역학자(譯學者)에 대한 고찰」(강신항, 『성균관대학교논문집』 11, 1966)
「초간(初刊) 한청문감(漢淸文鑑)에 대하여」(박은용, 『효성여자대학논문집』 Ⅷ·Ⅸ, 1971)
「漢淸文鑑解說」(今西春秋, 『朝鮮學報』 12, 1958)
The Study of Foreign Languages in the Yi Dynasty(1392∼1910) Ⅰ∼Ⅲ(Ki―Joong Song, Journal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No. 54∼56, 1981∼1982)
「한청문감(漢淸文鑑)에 대하여』(성백인, 『김철준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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