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노걸대』는 청어 역관들의 양성 및 역과시용으로 1704년에 간행한 교재이다. 8권 8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한어(漢語)로 기술된 ≪노걸대≫를 만주어로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은 필사본의 상태로 사용되다가, 1704년에 간행한 ≪청어총해≫ 4종 20권 중에 포함되어 처음으로 출판되었지만 현전하지 않는다. 현존본은 1765년 김진하가 수정하여 간행한 중간본으로 만주 닝구타의 비터시에게서 만주어의 음과 철자를 교열 받아 이루어졌다. 현재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본, 대영도서관본, 탁족문고본 등 3질이 전한다.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본은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인문과학』 11·12집에 영인되었다.
8권 8책. 목판본.
현존본은 1765년(영조 41) 당시 함흥 역학(咸興譯學)이던 김진하(金振夏)가 수정하여 기영(箕營 : 지금의 평양)에서 간행한 중간본이다. 본래 한어(漢語 : 중국어)로 기술된 『노걸대』를 만주어로 번역한 책이다.
각 행의 좌측에 만주문자로 쓰고 우측에 만주어음을 한글로 전사하였으며, 한 문장 혹은 한 구절이 끝나면 국역(國譯)을 붙여놓은 형태로서, 사역원 간행 외국어 회화학습서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이 책이 개간(開刊)된 경위는 『삼역총해(三譯總解)』의 경우와 대체로 같다.
『삼역총해』의 원 서문에 의하면 1680년(숙종 6)에 최후택(崔厚澤) 등이 한어 『노걸대』를 만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번역사업은 1684년에 이미 완성되었던 듯하다. 『통문관지』 권2 과거 · 청학조에 강희(康熙) 갑자년(1684)부터 청학 역과시용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는 『신번노걸대(新飜老乞大)』가 1680년부터 번역이 시작된 책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필사본의 상태로 사용되다가, 1703년 박창유(朴昌裕) 등 6인이 연재(捐財)하고 이세만(李世萬) 등이 글씨를 써서, 이듬해인 1704년에 간행한 『청어총해(淸語總解)』 4종 20권 중에 포함되어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이때의 간행본은 현전하지 않는다.
현존 『청어노걸대』에 실려 있는 「청어노걸대신석서(淸語老乞大新釋序)」에 의하면, 『삼역총해』는 처음부터 만주어 저본이 있었기 때문에 어그러진 곳이 별로 심하지 않았으나, 『청어노걸대』는 병자호란 후에 청나라에서 돌아온 우리나라 사람이 습득하였던 만주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긋나고 생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어총해』 4종 중에서 우선 『청어노걸대』의 수정작업이 추진된 까닭은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수정판은 김진하가 만주지역과 교역의 요지였던 함경도의 회령 개시(開市)에 머물렀던 기간에 만난 만주 닝구타(寧古塔)의 비터시(筆帖式)에게서 만주어의 음과 철자를 교열받아 이루어졌다. 그때 완성하여 1765년 간행된 책으로는 ①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본, ② 대영도서관본, ③ 탁족문고본(駒澤大學圖書館 보관, 永平寺藏書 濯足文庫) 등 3질이 전한다.
그 중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본이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인문과학(人文科學)』11·12집에 영인되었다. 『청어노걸대』를 저본인 『한어노걸대』와 비교해 보면 내용이 생략된 곳이 더러 있다. 만주문에도 권점이 누락된 곳과 특이한 어형들이 간혹 나타난다.
만주문 우측에 달아놓은 한글표기는 만주어 음운사 연구에 도움이 되며, 우리말 번역은 18세기의 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