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파견된 숙위학생(宿衛學生)으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신라는 중대부터 당나라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국자감(國子監)에 입학시키고 학업을 닦게 하였는데, 이들에게 10년의 연한이 차면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고, 또 다른 숙위학생을 교대로 보내어 학업을 닦게 하였다.
이와 같은 관례에 따라 825년(헌덕왕 17)에 최이정(崔利貞)·박계업(朴季業) 등과 더불어 당나라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였는데, 이들의 귀국에는 신라 정부의 큰 관심과 당나라 조정의 특별한 배려가 있었다.
즉, 신라는 왕자 김흔(金昕)을 입당조공(入唐朝貢)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당나라 조정에 청원하도록 이르기를, 이미 당나라에서 학업을 닦고 있는 김숙정 등을 본국으로 보내줄 것과 새로 입당한 김윤부(金允夫)·김입지(金立之) 등 12인은 당경(唐京)에 숙위학생으로 머물러 있게 하여주되, 국자감에 입학하여 학업을 닦게 하고, 또 이들에게 홍로시(鴻臚寺)에서 학비를 마련해주도록 부탁하였다.
신라 유학생 중 당나라에서 실시한 빈공과에 합격한 자는 58인이나 된다. 그는 이들 가운데 최이정·박계업 등과 더불어 이름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