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군이 두량윤성(豆良尹城 : 지금의 금산군 부리면)에서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때, 신라는 661년(태종무열왕 8)에 대군으로 이를 공격하였으나 36일이 지나도록 이기지 못하고 부득이 퇴진하게 되었다.
신라 퇴진군이 고부(古阜) 동쪽 빈골양(賓骨壤)에 이르렀을 때, 백제군을 만나 싸웠으나 신라군은 또 패하여 퇴진하였다. 이같이 잇따른 신라군의 패전소식을 들은 태종무열왕은 장군 김순·진흠(眞欽)·천존(天存)·죽지(竹旨) 등을 파견하여 신라군을 구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김순 등이 이끄는 신라군이 고령 가야천(伽倻川) 가시혜진(加尸兮津)에 도착하였을 때, 백제군은 이미 거창 동쪽 가소천(加召川)으로 물러가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군도 다시 되돌아오게 되었다. 왕은 대로하여 출전한 장군들의 허물을 논하고, 죄를 차등 있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