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군자감정에 임명된 학자·의병.
이칭
  • 이칭형원(浻源). 호는 송호(松湖)
인물/전통 인물
  • 본관고령(高靈)
  • 사망 연도1640년(인조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군자감정(軍資監正)
  • 출생 연도1547년(명종 2)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송호집 / 용사록 미디어 정보

송호집 / 용사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군자감정에 임명된 학자·의병.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형원(浻源). 호는 송호(松湖). 아버지는 부장(部將) 김두문(金斗文)이며, 어머니는 남원김씨(南原金氏) 김우(金雨)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김연의 백형 김길(金洁)과 재종형 김면(金沔)과 합하여 김씨 삼군자(三君子)라 칭송되었는데 그의 학문도 김면에게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김면이 조종도(趙宗道)·곽준(郭䞭)·문위(文緯) 등과 의병을 일으키자 김연도 참여하여 정진(鼎津)·무계(茂溪)에서 대승하여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제수되었다. 이후 김연은 고향으로 가속(家屬)을 피난시키는 한편, 진영에 있는 김면을 끊임없이 도왔다.

1593년에 김면이 군중(軍中)에서 죽자,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상을 마치고 돌아왔다. 난이 평정되자 고령(高靈)에서 울산(蔚山)으로 옮겨 살며, 선업(先業)을 잇고 후생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송호집(松湖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송호집(松湖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