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김정회 고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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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김정회 고가 안채 정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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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조선후기 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 김정회 관련 주택. 주거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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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조선후기 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 김정회 관련 주택. 주거건축.
개설

1993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보정(普亭, 또는 淵淵堂) 김정회(金正會, 1903∼1970)가 살던 옛 집이다. 1862년(철종 13)경에 지어 그의 고조부 때부터 살아온 집이라 한다. 조선 후기에 지은 전형적인 상류계층의 가옥이다.

내용

안채 · 사랑채 · 행랑채 · 사당 및 2채의 곳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동측에 행랑이 있다. 사랑 뒤에는 안채가 1m 정도의 높은 기단 위에 위치하며 마당 양측에는 2채의 곳간이 마주하고 있다.

안채는 정면 7칸의 규모이다. 정면에서 보면 왼쪽부터 건넌방과 대청 · 안방 · 부엌 순으로 칸살이 구성되어 일반적인 一자집과 같으나, 부엌 뒤쪽에 2칸의 방을 덧달아 내어 뒷마당에서 보면 ㄱ자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안채와 대청 · 부엌은 각각 2칸의 크기이다.

마루 전면의 기둥은 두리기둥〔圓柱〕을 사용하였는데 기둥 사이가 짧고 기둥의 높이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용마루를 높게 꾸미기 위해 수평마루 하부에 층단을 두어 2단으로 쌓은 층단마루[層段屋脊]가 특이하다.

즉, 착고(着高: 지붕마루의 적새 밑의 기왓골을 막는 수키와)와 부고(지붕마루에 있어서 차꼬막이 위에 옆 세워 대는 수키와)를 쌓고 그 위에 암키와 적새(지붕마루를 덮어 쌓은 암키와)를 놓은 다음 처마처럼 내림새를 놓고 다시 그 위에 적새를 쌓고 수키와를 덮었다.

집주인의 말에 의하면 참판이 살던 집이어서 예로부터 이와 같이 지붕이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본래 예조참판을 역임한 정택신(鄭宅臣)의 후손들이 살던 집이었는데, 김정회의 4대조인 김양대(金養大)가 구입하여 이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사랑채는 정면 6칸의 一자집이다. 전후 퇴집의 구조로서 전퇴에는 마루를 깔았고 후퇴는 주로 뒷방과 벽장 등 수장 공간이 된다. 칸살은 책방 · 대청 · 큰방 · 아랫방 순으로 이루어졌으며 동쪽 끝 칸은 안대문을 만들었다. 본래 여기는 사랑 부엌 자리였으나 안대문을 옮긴 것이다.

사랑채 동편에는 행랑채가 사랑채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고 안채 동북쪽에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장대석으로 높게 기단을 쌓고 원형의 장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각 칸에는 2짝 빗살문이 있고 박공면에 풍판(風板)을 시설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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