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판은 풍판널〔廳板〕과 뒤에서 풍판널을 잡아주고 엮어주는 가로 방향의 띠장목〔帶木〕, 풍판널 앞에서 풍판 사이를 세로로 길게 연결해주는 쫄대목〔率木〕으로 구성된다. 17∼18세기 『영건의궤』에서는 풍차판(風遮板)이라고 기록하였고, 이후 19세기 영건의궤부터 풍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맞배지붕은 책을 엎어 놓은 것과 같은 형태로 앞뒷면에만 지붕이 있고 양 측면에는 지붕이 없다. 우진각이나 팔작지붕에 비해 추녀가 없고 가구가 간단해 경제적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측면이 비바람에 노출된다는 것이 단점이다. 측면에 노출된 목부재들이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 널을 이어 붙여 풍판이라는 것을 달아준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에는 맞배지붕이라 할지라도 풍판이 없다. 봉정사 극락전, 강릉 임영관 삼문,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조사당 등에서 풍판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맞배지붕건물은 대개 풍판이 있다. 따라서 풍판은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고려시대 건물이 양 측면 기둥 밖으로 도리가 훨씬 많이 빠져나가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비바람을 온전히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조선시대 건물에 비해서는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양 측면 기둥 밖으로 빠져나온 도리가 짧아지면서 풍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목재의 고갈이 가져온 결과로 추정된다. 기둥 밖으로 빠져나온 도리는 이어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건물 중앙에서부터 하나의 부재로 뺀다. 따라서 비교적 목재가 풍부한 고려시대에 가능했었던 것이다.
풍판을 걸 때는 도리와 도리 사이를 가로로 길게 연결한 장선이 있는데 이를 집우사라고 한다. 풍판 하단은 늘어진 곡선으로 자르는 게 보통인데 때로는 수평으로 자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