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영주 부석사 조사당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에 있는 고려 후기 승려 원응국사가 중건한 사찰 건물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건물로,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건물이다. 건물은 맞배지붕이다. 조사당 내부에는 절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골담초가 있다. 부석사 조사당은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건축수법을 보여준다. 또 조사당 벽화(국보)는 남아 있는 벽화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중요하다.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후기 승려 원응국사가 중건한 사찰건물. 전각.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종보 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대공과 소로를 놓아 종도리 장여와 종도리를 받게 했으며, 종도리 하부에는 인(人)자 모양의 솟을합장을 결구하였다. 솟을합장은 종보의 윗면을 비스듬히 파내고 솟을합장을 꽂은 후 쐐기를 박아 튼튼하게 결구하였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정면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이고 배면 처마는 서까래만 사용한 홑처마이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본래 전돌을 깔았으나 지금은 참배가 편리하도록 마루를 설치하였다.
특징
평면은 고대 건축에서 사용하던 엄격한 비례체계에서 벗어나 완척(完尺) 위주로 평면을 설정하는 경향으로 변화해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지니고 있다. 창호는 정면 가운데 칸에만 출입문을 달고, 좌우 협칸에는 살창을 설치하였으며, 나머지 삼면은 벽으로 처리하였다. 이러한 창호 구성 형식은 오래된 건축 수법인데 조선 초기의 건물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국보, 1962년 지정)에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3(김봉렬, 돌베개, 2006)
- 「부석사 조사당 수리·실측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5)
- 「부석사 무량수전 실측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2)
- 「부석사 조사당」(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고건축』3, 1976)
- 부석사(www.pusoksa.org)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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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우두머리. 제석천(帝釋天)과 함께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불법 수호의 신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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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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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먹물로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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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기둥의 중간이 배가 부르고 아래위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지게 만드는 방법. 구조의 안정과 착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한 수법으로, 그리스를 비롯한 한국ㆍ중국ㆍ일본 등의 고대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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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대들보 위의 동자기둥 또는 고주(高柱)에 얹히어 중도리와 마룻대를 받치는 들보. ⇒규범 표기는 ‘마룻보’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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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처마 끝의 서까래 위에 짧은 서까래를 잇대어 달아낸 처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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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부연을 달지 않고 처마 서까래만으로 된 처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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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예전에 왕궁, 사찰, 왕릉 따위의 벽이나 바닥을 장식하는 데 쓰던 벽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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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서까래를 얹기 위하여 기둥의 중심선 바깥쪽에 걸치는 도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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