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출생. 본관은 청도(淸道).
1937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학부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1942년 귀국하여 순천공립중학교 교사, 1948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감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군에 입대하여 그 해 11월 계엄사령관 보좌관이 되었으며 이후 1961년까지 육군본부 민사부장 보좌관, 국방부차관 보좌관, 법무부 비서관, 내무부 총무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6월 대한체육회 수습대책위원에 위촉되었고 7월 대한체육회 이사로 선임되면서 체육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64년 대한체육회 전무이사, 1967년 대한럭비풋볼협회 부회장, 1971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아시아경기연맹(A.G.F.) 평의원, 1982년 대한체육회 상근부회장, 1983년 대한럭비풋볼협회 회장,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위원, 1985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위원, 1989년 대한체육회 회장을 거쳐,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국민체육진흥공단 고문, 대한럭비풋볼협회 명예회장을 역임하였다. 1991년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부회장, 1993년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1994년 2002년 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92년 한국체육대학으로부터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재임하던 중에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성사시켜 남북한 축구대표팀이 각각 남과 북을 서로 방문하여 경기를 가지게 하였다. 1991년 일본 지바(千葉)현에서 개최되었던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이 단일팀(Korea Team)으로 출전하게 하는 등 남북체육교류에 노력하였으며 강직한 성격에 아마추어정신 신봉자였다.
1971년 국민훈장 목련장, 1982년 체육훈장 맹호장, 1983년 대한국민 체육상(공로상), 1990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