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풋볼 (rugby 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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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풋볼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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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형 공을 상대편의 골에 찍거나 공을 차서 크로스바를 넘긴 득점으로 승부를 겨루는 운동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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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타원형 공을 상대편의 골에 찍거나 공을 차서 크로스바를 넘긴 득점으로 승부를 겨루는 운동경기.
내용

양 팀은 각각 15명 이내의 선수로 구성되며, 경기 도중 부상자에 한하여 7명의 교체가 가능하다. 경기시간은 중학교팀은 50분, 고등학교팀은 70분, 대학교팀은 80분, 국제경기 80분씩을 전후반으로 나누며 중간에 휴식시간 10분을 둔다. 득점방법은 트라이 5점, 트라이 후의 골 2점, 페널티 킥에 의한 골 3점, 이 밖의 드롭킥에 의한 골 3점이 있다.

심판은 주심 1명, 터치저지(touch judge)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운동경기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며, 어떠한 기후조건이나 상황 속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럭비의 기원은 그리스·로마에서 즐기던 풋볼에서 비롯되었고, 이러한 볼 경기는 19세기 초에 이르러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 현대 럭비의 발생은 1823년 11월 영국 럭비학교의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풋볼대회가 열렸을 때 엘리스라는 소년이 경기에 열중한 나머지 규칙위반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볼을 껴안고 상대방 골문으로 돌진하였고 상대편 선수들도 이 무례한 행동을 저지하려는 우발적 행위를 보이게 됨으로써 현대럭비의 탄생을 맞게 되었다.

그 뒤 손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현대 럭비경기가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에 널리 보급되면서 세계적인 스포츠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1872년에는 영국의 럭비풋볼유니언이 설립되었고, 1873년 스코틀랜드, 1879년 에이레, 1880년 웨일스 등에 각각 유니언이 설립되어 이들 유니언의 대표팀간에 국제시합이 전개되었다. 1890년 4월에는 국가별로 서로 다른 경기규칙을 통일하기 위하여 국제럭비풋볼보드가 결성되었다.

우리 나라의 럭비풋볼은 1920년대 초에 도입되었는데, 도입 당시 경기는 주로 경성전기·철도청·총독부·경성사범학교·경성중학교 등을 중심으로 행하여졌다.

1929년 3월 조선럭비축구협회가 발족되면서 럭비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보성전문학교·양정고등보통학교·중앙고등보통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 등이 럭비선수단을 창단하여 일본인 학교와 대항전을 가지며 발전하였다.

특히, 1929년 5월에 창단된 보성전문학교팀은 그 해 10월 일본 관서지부 추계리그전에 참가하여 우승하였다. 1946년 3월에는 조선럭비축구협회가 창설되어 지금까지 많은 원정경기와 국내시합을 주관하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군의 전력증강을 위하여 육·해·공군사관학교, 1군단육군공병학교·12사단·25사단·수도사단·육군군사정보부대 등 많은 팀이 구성되어 럭비경기가 활기를 띠었다.

1957년 12월에는 대만 체육협진회의 초청을 받아 육국군사정보부대팀이 광복 후 처음으로 원정경기를 가졌고, 1961년 4월 이후부터는 일본과의 친선경기를 갖기 시작하였다. 1964년 5월에는 일본 호센(保善)고등학교가 내한하여 경기를 가졌고, 1967년 1월에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연합팀이 일본에서 원정경기를 갖게 되어 한일간의 교류가 활발하였다.

1969년에는 한국의 김종렬(金鍾烈,) 태국의 차아록(Chaloke), 일본의 긴노(金野滋) 등의 발기로 아시아럭비연맹을 구성하고 2년마다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갖기로 결정하였다. 1967년 제5회 대회와 1992년 제13회 대회는 우리 나라에서 유치하였고, 1982년 제8회 싱가포르대회에서는 숙적 일본을 물리치고 최초로 우승을 하였다.

럭비경기는 국제적인 선수권대회보다는 팀간의 초청 또는 원정경기를 위주로 하는 운동경기로서, 우리 나라는 주로 일본·대만·홍콩과 초청·원정 경기를 하고 있다.

경기는 한 팀이 15명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근래에는 한 팀이 7명으로 구성되는 7인제 경기가 보급되고 중학교 12인제 등 다양한 종류의 경기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참여하는 국제경기로는 15인제 월드컵대회·아시아선수권대회·한일주니어교환경기, 7인제 월드컵대회·홍콩대회·프랑스대회·일본대회·두바이대회가 있으며 1998방콕아시아대회에서 15인제와 7인제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국내경기는 춘계리그전·삼성컵7인제선수권대회·충무기전국중고대회·대통령기종별선수권대회·문화관광부장관기전국중고대회·종합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우리 나라가 참가하는 국제경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시아선수권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일본은 7회까지 모두 우승, 우리 나라는 대부분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다가 1982년 제8회 대회에서 우승하고 이후 1986년 제10회 대회, 1988년 제11회 대회, 1990년 제12회 대회에서 3회 연속 우승하여 아시아 럭비의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우리 나라는 1982년 제7회와 1983년 제8회 홍콩7인제선수권대회에서 B그룹 우승을 하는 등 아시아지역에서 높은 수준의 럭비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1998년 현재 국내 주요팀으로는 삼성전관·코스코·상무·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경희대학교를 비롯하여 배재고등학교·양정고등학교·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동도공업고등학교·순천공업고등학교 등이 맹활약 중에 있다.

참고문헌

『스포츠시리즈』 9-럭비-(이범제, 동양문화사, 1982)
『올림픽 ’88학생스포츠』(김익달, 학원사, 1983)
『스포츠연감』(일간스포츠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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