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삼(子三). 할아버지는 김상현(金尙鉉)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김계환(金啓煥)이며, 어머니는 최주화(崔柱華)의 딸이다.
1727년(영조 3) 전강(殿講)에서 장원,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받아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3년 지평(持平), 이듬해 정언(正言)이 되어 박사익(朴師益)의 욕심 많고 비루함을 욕하다가 파직당하였다. 1735년 다시 정언으로 기용되었으며 이듬해 필선(弼善), 1741년에는 장령(掌令)을 거쳐 동지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사간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어 사리(事理)의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않고 뇌물만을 모아 소송을 가름하는 장례원판결사 김담(金墰)을 파직시키도록 건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