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이조판서, 우참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특히, 1573년 평안 삼도사로 나가 군적(軍籍)을 정리했으며, 다음 해에는 평안도 순무어사로 활약하였다. 1584년 이후로는 전한(典翰)·직제학(直提學)·승지·좌참찬·동지중추부사·대사헌·대사간·대사성·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임금의 파천을 반대했으며, 임금 일행이 개경에 이르자 동인(東人) 이산해(李山海)의 실책을 탄핵해 영의정에서 파직시키고, 백성들의 원성을 샀던 김공량(金公諒)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뒤에 정철(鄭澈) 밑에서 체찰부사(體察副使)를 역임하고, 양호조도사(兩湖調度使)로 전쟁 물자를 지원했으며, 접반사(接伴使)로서 명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였다. 또, 일본과 강화 회담을 벌일 때 이덕형(李德馨)과 함께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부터 예조판서·지의금부사·대사헌·이조판서를 지냈고 지돈녕부사를 거쳐 우참찬까지 승진하였다. 대사헌 때 가족을 멀리 피난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체직되는 등 소소한 정치적 부침을 겪기도 했으며, 문장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경제 문제에 밝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명신이었다. 임진왜란이 지난 뒤 전쟁의 수습 과정에서 사망하자, 선조는 조회를 정지하고 추모의 뜻을 표시하였다. 시호는 효헌(孝獻)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용주유고(龍洲遺稿)』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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