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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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전기 승려 신월선사가 창건한 사찰.
내용 요약

화계사는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 전기 승려 신월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광종 때 법인대사 탄문이 지금의 화계사 근처인 삼각산 부허동에 보덕암을 창건하였다. 1522년 신월이 서평군 이공과 협의하여 지금의 화계사 자리로 옮기고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화계사라고 고쳐 불렀다. 1880년에는 조대비가 명부전의 불량답(佛糧畓)을 시주했다. 이 무렵 화계사에는 대비와 상궁들의 왕래가 잦아 사람들이 ‘궁(宮)절’이라고 불렀다. 화계사는 숭산(崇山: 1927∼2004)이 1984년 개원한 국제선원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포교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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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전기 승려 신월선사가 창건한 사찰.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역사적 변천

1522년(중종 17)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창건하였다. 원래는 고려 광종법인대사 탄문(法印大師 坦文)이 지금의 화계사 근처인 삼각산 부허동(浮虛洞)에 보덕암(普德庵)을 창건하였는데, 1522년 신월이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지금의 화계사 자리로 옮기고 법당 3처(處)와 스님들의 요사(寮舍) 50칸을 지어 화계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1618년(광해군 10) 9월 화재로 모두 불타 버리자, 이듬해 도월(道月)이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중창하여 다음해 3월에 완공하였다. 그 뒤 1866년(고종 3) 용선(龍船)과 범운(梵雲)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퇴락한 건물들을 보수하였으며, 1876년 초암(草庵)이 관음전을 중창하였다.

1878년 초암이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였으며, 1880년에는 조대비(趙大妃)가 명부전의 불량답(佛糧畓)을 시주했다. 이 무렵 화계사에는 대비와 상궁들의 왕래가 잦아 사람들이 ‘궁(宮)절’이라고 불렀다.

1885년 2월 금산(錦山)이 산신각(山神閣)을, 1921년 현하(玄荷)와 동화(東化)가 관음전과 시왕전을, 1943년 다시 시왕전을 중수하였다. 1964년 오백나한전을 건립하고, 1972년 종각을 지었다. 1973년 대웅전 삼존불을 새로 봉안했으며, 1974년 관음전이 소실되었다.

현황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 대적광전 · 명부전(冥府殿) · 삼성각(三聖閣) ·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 범종각 · 보화루(寶華樓) · 조실당 · 백상원(白象院) 등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이들 불상의 조성 연대는 미상이나 대웅전이라는 현판은 신관호(申觀浩)가 쓴 글씨이다.

현재의 대웅전은 1870년(고종 7) 용선과 초암이 화주(化主)가 되어 중건하였다. 앞면 3칸 · 옆면 3칸 규모로서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 건물이다. 대웅전은 내부천장의 장식이나 건축부재의 장식이 모두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목조건축물이다.

대적광전은 1991년 정수가 조성한 4층 건물로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현대식 불전이다.

명부전에는 죽은 뒤 명부세계의 교주인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좌우보처 그리고 염라계(閻羅界)의 십대왕과 사자들이 봉안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878년 초암이 중건한 것이다. 이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과 시왕상은 고려 말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조각한 것이라고 하며, 원래는 황해도 배천 강서사(江西寺)에 모셨던 것을 1877년에 옮겨온 것이다. 명부전의 현판과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대웅전 오른편에 위치한 천불오백성전은 1964년에 준공한 것인데, 내부에는 오백의 성상(聖像)을 봉안하고 있다. 이 오백의 성상은 최기남(崔基南)이 1915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금강산에서 입산수도하여 오직 18나한상과 천불상 ·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여주 신륵사(神勒寺)에 모셔 오던 것을 옮겨와 대웅전에 보관하다가, 최기남의 가족이 천불오백성전을 짓고 봉안하게 된 것이다.

2층 6각형의 건물인 범종각에는 불구사물(佛具四物: 불교의 예불의식에 사용하는 네 가지 법구)이 모여 있다. 이 가운데 2층 천장에 걸려있는 동종(보물, 2000년 지정)은 본래 경상북도 풍기 희방사(喜方寺)에 있던 종으로 1898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종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따르면, 1683년에 사인 스님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무게는 300근에 달한다고 한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며, 사실성과 화사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승려가 주1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있어, 종 연구와 더불어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범종각에는 만지기만 하여도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질 정도로 심하게 풍화된 목어(木魚)가 걸려 있는데, 이 목어는 원래 고려 때의 창건사찰인 보덕암에 있던 것으로 매우 오래된 것이다.

이 밖에 경내에는 1978년 8월에 세운 고봉(古峰: 1890∼1961)의 추모탑과 오탁천(烏啄泉)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오탁천은 까마귀가 주둥이로 바위를 쪼아 약수가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속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하며, 흥선대원군도 이 약수로 피부병을 고치기 위하여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화계사는 숭산(崇山: 1927∼2004)이 1984년 개원한 국제선원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포교로 유명하다. 국제선원의 설립에 앞서 숭산은 1966년 일본홍법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에 선원을 설립하고 포교에 힘썼다.

이들 선원의 포교활동과 연계하여 화계사의 국제선원에는 외국인 승려들과 사부대중들이 참여하는 하안거 및 동안거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영어 참선 법회를 열고 있으며, 이밖에도 다양한 수행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전통사찰총서 4-서울의 전통사찰-』(사찰문화연구원, 1994)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화계사 홈페이지(http://www.hwagyesa.org)
주석
주1

성명을 적지 않은 백지 임명장. 국가의 재정이 몹시 어려울 때 국고(國庫)를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중앙의 관원이 이것을 가지고 전국을 돌면서 돈이나 곡식을 바치는 사람에게 즉석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어 명목상의 관직을 주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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