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

조계사
조계사
불교
유적
1910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에 창건한 절.
이칭
이칭
각황사(覺皇寺), 태고사
유적/건물
건립 시기
1910년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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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계사는 1910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에 창건한 절이다. 한국 불교 총본산으로 불릴 정도로 근현대 불교사에서 상징적인 사찰이다. 각황사를 전신으로 한다. 1938년 태고사로 이전 신축한 후, 1962년 비구승과 대처승의 통합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과 함께 조계사로 개칭하였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직접 관할하는 본사이기에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이다.

정의
1910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에 창건한 절.
건립경위

1895년(고종 32),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승려 도성 출입 금지가 해제되었다. 일본의 일련종 승려 사노 젠레이[佐野前勵]의 요청을 총리대신 김홍집(金弘集: 1842~1896)이 조정에 건의하여 고종이 윤허한 것이다. 승려 도성 출입 금지의 해금 이래 조선 불교는 4대문 안에 사찰을 건립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조계사(曹溪寺)의 전신인 각황사(覺皇寺)를 1910년 종로구 수송동에 창건하게 되었다. ‘각황(覺皇)’은 붓다를 깨달음의 황제라고 명명하는 데에서 유래한다.

변천

각황사는 일제강점기에 도심 포교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35년 8월, 조선불교 본산주지회의에서 조선불교를 대표할 ‘총본산 건축’을 결의하였다. 총본산은 각황사가 일본 건축 양식이었기에 조선 전통 사찰 양식으로 건축하기로 하였다. 위치는 각황사 옆의 중앙교무원 사무소 부지로 정하였고, 공사비는 5만 원으로 책정하였다. 1937년 3월 5일, 제1회 총본산건설위원회가 개최되어 “조선불교 선교 양종의 사무소 격인 각황사를 이전하고 신축하되, 그 총본산은 일본 사찰 양식으로 된 각황사와는 달리 우리의 전통 양식인 정읍의 보천교(普天敎) 십일전(十一殿)을 옮겨 짓는다”고 결정하였다. 보천교 십일전은 일제강점기의 최대 목조건물이었다.

1937년 7월 16일 각황사 개축 인가 및 법률 절차가 마무리되었고, 1938년 7월 6일에 건축허가원이 허가되었다. 같은 해 10월 12일에 상량식을 거쳐, 동년 동월 25일 수많은 인파가 모여든 가운데 낙성 봉불식을 거행하였다. 건축비는 전국 31개 본산에서 분담하였다. 이때까지도 절의 이름을 정하지 못하다가 같은 해 10월 26일, 본산주지회의에서 ‘사명(寺名) 및 사격(寺格) 심의 임시기구’를 설치하였다. 이 기구는 “역사와 유래가 깊은 북한산의 태고사(太古寺)를 각황사 옆에 새로 지은 대웅전 터로 이전해 오자”는 결의를 하였다. 기존 사찰 중에서 사격이 높은 사찰인 북한산 태고사를 총본산으로 정하고, 사찰을 종로구 수송동으로 이전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었다.

이후 1939년 5월 22일 조선총독부에 태고사를 총본산 사명으로 신청하였다. 1940년 5월 총본산 사명이 태고사로 인가되었으며, 같은 해 7월 15일에 태고사 이전이 허가되었다. 총본산을 새로이 창건하지 않고 북한산 태고사를 종로구 수송동으로 이전한 이유는, 태고사가 주1가 창건하여 주석하면서 사상과 신앙을 선양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총본산으로 삼은 것은 태고국사의 법맥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었다. 태고사는 한국 불교 총본산의 사격을 가지고 그 역할을 현재까지도 수행하고 있다.

1954년 5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에 의하여 촉발된 불교정화운동[^2]은 1962년 4월 11일 비구승과 대처승의 통합 종단 출범으로 마무리되었다. 통합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과 더불어 태고사는 조계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대처승들이 태고국사를 종조로 삼고 있었던 반면, 비구승들은 불교정화운동의 과정 중 제2회 전국비구승대회에서 보조국사(普照國師)를 종조로 주장하였다. 현재 비구승의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신라 도의국사(道義國師)를 종조(宗祖)로, 보조국사를 중천조(重闡祖)로, 태고국사를 중흥조(中興祖)로 하고 있다.

불교 문헌에서 조계(曹溪)란 중국 선종의 제6조 혜능(慧能)을 가리키는 말이다. 혜능이 선법을 크게 선양하였던 곳이 ‘조계’의 보림사(寶林寺)였기에 조계를 혜능이라 지칭한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명(宗名)과 조계사의 사명에는 종단의 시원과 법맥이 조계 혜능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조계사는 현재 한국 불교 총본산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직접 관할하는 본사이기에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이다. 근래에는 총본산으로서의 위상에 걸맞도록 대웅전 중수와 일주문 건립 등 중창 불사를 하였다. 일주문에는 ‘대한불교총본산조계사(大韓佛敎總本山曹溪寺)’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어 조계사의 사격과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조계사 경내에는 조계종단의 행정[총무원]과 입법[중앙종회], 사법[호계원] 업무를 관장하는 중앙종무기관이 있다. 이는 각황사 창건 시 중앙교무원이 설치된 이래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조계사는 24시간 경내를 개방함으로써 국내인과 외국인,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구별 없이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사찰을 방문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조계사가 각황사로 창건된 이래 도심 포교당의 역할을 유지하고 있음과 더불어, 시민 휴식 공간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조계종사: 근현대편』(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2005)
강석주, 박경훈, 『불교근세백년』(민족사, 2002)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추상로, 『조선불교약사』(신문관, 1917)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고려 말기의 승려(1301~1382). 속성은 홍(洪). 호는 태고(太古). 우리나라 임제종(臨濟宗)의 시조로, 선교 일체론(禪敎一體論)을 주창하고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우리말샘

주2

비구승과 대처승 간에 발생한 이 분규를 비구승은 ‘불교정화운동’이라 명명하고, 대처승은 ‘법난(法難)’이라 명명한다. 불교정화운동은 한국 불교에서 승려가 결혼하고 고기를 먹는 ‘대처식육(帶妻食肉)’의 풍토를 없앴다는 의미를 가진다. 반면에 법난(法難)은 공권력 즉, 이승만 정권에 의하여 불교계가 탄압받아 혼란해졌다는 의미를 가진다.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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