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 ( - 서울 )

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
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
공예
유물
문화재
1683년(숙종 9) 4월에 승려 장인 사인(思印)이 제작한 동종.
이칭
이칭
희방사명 범종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思印比丘 製作 銅鍾 - 서울 華溪寺 銅鍾)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00년 02월 15일 지정)
소재지
서울 강북구 인수봉로47길 117, 화계사 (수유동)
정의
1683년(숙종 9) 4월에 승려 장인 사인(思印)이 제작한 동종.
개설

200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리 삼각산에 위치한 화계사 종각에 봉안되어 있지만, 원래는 경상도 영주의 희방사에서 사용하던 동종이다. 1943년에 안진호가 편찬한 『화계사지(華溪寺誌)』에 따르면, 1897년(광무 원) 미황사의 운판과 함께 구입하였다고 한다. 또한 종신에 기재된 주종기에 “강희 22년 계해 4월 일 경상도 풍기지 서면 소백산 희방사 대종 중삼백근 주성야 … 연화질 통정대부 화원 사인 담연 설옥 청윤 조신 후영(康熙二十二年 癸亥四月日 慶尙道 豊基地 西面 小伯山 喜方寺 大鐘 重三百斤 鑄成也 … 緣化秩 通政大夫畵員思印 湛衍 雪玉 淸允 祖信 厚英)”이라 기록되어 있어, 1683년 4월 경상도 풍기(현재 경상북도 영주시) 소백산에 위치한 희방사에 봉안하기 위해 수장(首匠) 사인(思印)의 지휘 아래에 보조 장인 담연(湛衍, 淡演), 설옥(雪玉), 청윤(淸允), 조신(祖信), 후영(厚英) 등 모두 6명의 주종장이 참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화계사동종은 전체 높이가 97.4㎝이고, 입지름이 67.6㎝로, 17세기 중 · 후반에 제작된 동종들 가운데 중간 크기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옅은 녹색이 감돌고 있어 주종기에 기재된 300근이라는 중량에 비해 가벼운 무게감을 보여 준다. 종의 형태는 천판(天板)에서 종신 2/4 부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3/4 부분에서 종구까지 직선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낮고 편평한 천판 위에는 음통(音筒)이 없이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을 맞댄 모양의 종뉴(鍾鈕)가 천판에 부착되어 있다.

종신에는 다양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천판 바로 밑에는 이중의 원권(圓圈)을 갖춘 범자(梵字)를 2줄로 부조하였는데, 상단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하단에는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진언 바로 밑에는 굵은 당초문 띠에 9개의 만개한 연꽃을 장식한 정사각형 연곽(蓮廓) 4개를 배치하였고, 연곽 사이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며 “종도반석 왕도미륭 혜일장명 법주사계(宗啚磐石 王道彌隆 惠日長明 法周沙界)”라고 쓴 장방형 불패(佛牌)가 부조되어 있다. 맨 아래 종구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이 둘러져 있다.

특징

화계사동종은, 천판과 종구의 형태를 비롯하여 종신 상부와 하부에 부조된 원권의 범자, 정사각형의 연곽, 연곽 사이에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는 불패, 종구에 둘러진 연화당초문 장식 등이 17세기 전 · 중반에 활동한 승려 주종장 원응(元應)이 제작한 안양 삼막사동종(1625년, 망실), 서산 부석사동종(1669년)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 준다. 따라서 사인은 17세기 전 · 중반에 활발한 활동을 펼친 원응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주종장으로 여겨진다. 화계사동종에서 성립된 사인의 작품 양식은 양산 통도사동종(1686년), 의왕 청계사동종(1701년)에서도 지속적으로 표현되며, 18세기에 그를 계승하는 사인파 후배 장인들[극련(克連), 조신, 계일(戒日), 여석(餘釋)]이 제작한 금강산 장안사동종(1708년, 망실), 강화동종(1711년), 순천 천은사동종(1715년), 공주 공주포교당동종(1741년)에서도 확인된다. 그러한 점에서 이 동종은 사인의 작품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작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의의와 평가

화계사동종은 1660∼1670년대에 태행(太行)과 공동 작업을 진행하던 사인이 자신만의 독립적인 유파를 구성하여 활동하는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한 작품이다. 이 동종의 낮고 편평한 천판과 종구가 벌어지는 종형은 이후 그의 후배 장인인 극련 · 조신 · 계일 · 여석 등에게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 18세기에 들어서도 사인의 양식을 직접 계승한 사인파(思印派)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또한 화계사동종은 원래 희방사 봉안용 동종이 19세기 후반에 매매를 통해 현재 봉안 장소로 옮겨진 것이다. 화계사에서 동종을 새롭게 제작하지 않고 매매를 한 이유를 현재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사찰에서 매매를 통해 동종을 봉안한 사실을 통해 19세기 후반 사원 경제 체계의 단편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조선 후기 승장 인명사전: 공예와 전적』(안귀숙·최선일, 양사재, 2009)
「조선 후기 범종과 주종장 연구」(김수현,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조선 후기 주종장 사인비구에 관한 연구」(안귀숙, 『불교미술』 9, 동국대학교 박물관, 1988)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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