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세기 현종 연간부터 숙종 연간에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승려 주종장 사인비구 등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전통 동종 양식에 독창성을 가미하여 제작한 8구의 동종이다. 8구의 동종 가운데 1667년작 포항 보경사 서운암동종(보물, 2000년 지정), 1670년작 문경 김룡사동종(보물, 2000년 지정) 및 홍천 수타사동종(보물, 2000년 지정), 1674년작 안성 청룡사동종(보물, 2000년 지정) 등 4구는 사인과 태행(太行), 사인 · 태행 · 지준(智俊) 등 우두머리 장인[수장(首匠)] 간의 공동 작업을 통해 제작된 것이며, 1683년작 서울 화계사동종(보물, 2000년 지정), 1686년작 통도사동종(보물, 2000년 지정), 1701년작 의왕 청계사동종(보물, 2000년 지정) 등 3구는 사인이 독자적인 유파를 구성한 후 제작한 작품이다. 그리고 1711년작 강화동종(보물, 1963년 지정)은 사인을 계승한 후배 장인 조신(祖信)에 의해 제작되었다.
원래는 1711년작 강화동종만이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이후 사인비구의 활동과 작품 양식에 대한 역사적 · 학술적 ·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나머지 7구를 함께 묶어 2000년 2월 15일 보물로 일괄 지정되었다.
사인이 주종장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진행하기 이전에 다른 유파의 우두머리 장인으로 추정되는 태행 및 지준과 함께 제작한 동종은 총 4구가 확인된다. 1667년작 포항 보경사 서운암동종, 1670년작 문경 김룡사동종 및 홍천 수타사동종, 1674년작 안성 청룡사동종 등이며, 이러한 사실은 동종에 기재된 주종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들 사이의 공동 작업 기간은 약 7년간으로, 이들이 제작한 작품은 주로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에 소재한 사찰에 봉안되었으며, 보조 장인으로는 도겸(道謙), 담연(淡衍) 등이 반드시 참여하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동종의 형태는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 위에 한 마리의 용이 음통(音筒)을 꼬리로 감싸는 전통형 종뉴(鍾鈕)가 천판에 부착되어 있으며, 천판 바로 밑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원권(圓圈)의 범자(梵字)로 새겨 둘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굵은 당초문 띠에 9개의 만개한 연꽃을 표현한 정사각형 연곽(蓮廓) 4개를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에는 구름 위에서 연꽃 가지를 들고 서 있는 아름다운 보살 입상이나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는 “종도반석 왕도미륭 혜일장명 법주사계(宗啚磐石 王道彌隆 惠日長明 法周沙界)”라고 쓴 장방형의 불패(佛牌), 혹은 화염문과 굴곡진 당초문이 장식된 당좌를 배치하며, 마지막 종구에는 종신 전체를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 등으로 두르는 점이 특징이다.
이 시기 제작된 동종 양식은 17세기 전 · 중반에 활동한 승려 주종장 정우(淨祐), 신원(信元)이 제작한 남원 대복사동종(1635년), 부여 무량사동종(1636년) 등과 가장 흡사하다. 그러나 이 시기는 사인 · 태행 · 지준이 모두 우두머리 장인으로 참여해 하나의 작품을 공동으로 제작한 기간이다. 따라서 개별 장인의 작품 양식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현재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7세기 중반에 유파 간의 공동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주목된다.
사인이 독자적으로 유파를 구성하여 활동한 시기에 제작한 동종은 현재 총 3구가 확인된다. 1683년작 서울 화계사동종, 1686년작 통도사동종, 1701년작 의왕 청계사동종 등이며, 주로 경상도와 경기도 지역에 소재한 사찰에 봉안되었다. 그는 많은 수의 보조 장인과 함께 작업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보조 장인으로는 담연, 청윤(淸允), 조신, 극련(剋連), 계일(戒日) 여석(餘釋) 등이 참여하였다.
이 시기에 사인이 제작한 작품은 음통을 갖춘 단룡(單龍) 또는 음통이 없는 쌍룡(雙龍)으로 종뉴의 형태가 일정하지는 않으나, 낮지만 편평한 천판과 종구가 시각적으로 벌어지는 종형은 꾸준히 표현되었다. 또 종신 상부와 하부에 부조된 원권의 범자, 정사각형의 연곽, 구름 위에서 연꽃을 쥔 보살 입상, 연화당초문 등의 패턴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종형과 종신을 장식한 도안들은 17세기 전 · 중반에 활동한 승려 주종장 원응(元應)이 제작한 안양 삼막사동종(1625년, 망실), 서산 부석사동종(1669년)과 동일 계열에 속한다. 따라서 사인은 원응의 계보를 직접 계승한 후배 장인으로 여겨진다. 한편, 주종장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서울 봉원사동종(1682년), 수원 팔달문동종(1687년) 등이 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1711년작 강화동종은 사인을 계승한 후배 장인인 조신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다. 동종 종신에 “강희 50년 신묘 4월 일 강화정족산성조성예입 구종파철 중 2200근 첨입철 4320근 합 6520근 … 창시 유수윤공지완 … 유수민진원 … 개조 … 연화질 야풍5좌 구종 도화원 가선 총섭 사인 차조 도화원 가선 조신 극련 여석 혜석 계일 사익 수한 수민 묘잠 선등 자선 홍찬 삼익 월담(康熙五十年 辛卯四月日 江華井足山城造成曳入 舊鍾破鐵 重二千二百斤 添入鐵 四千三百二十斤 合六千五百二十斤 … 創始 留守尹公趾完 … 留守閔鎭遠 … 改造 … 緣化秩 冶風五坐 舊鍾都畵員 嘉善摠攝思印 次造都畵員嘉善祖信 克連 呂釋 惠釋 戒日 巳益 守汗 守敏 妙岑 先登 自先 弘粲 三益 月淡)”이라 양각된 주종기(鑄鍾記)가 남아 있어, 1711년(숙종 37) 4월 옛 종(1688년 제작)을 파종한 철 2200근에 철물 4320근을 새롭게 더하여 강화 정족산성에서 조신의 주도 하에 극련, 여석 등 모두 14명의 주종장이 참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강화동종은 낮고 편평하게 처리된 천판과 종구가 벌어진 종형에서 선배 장인인 사인의 작품 양식을 철저히 계승하고 있다. 또한 쌍룡의 종뉴, 연곽 및 종구에 화려하게 장식된 연화당초문도 사인의 작품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러나 크기가 커지면서 천판 위에 주물 흔적과 종신에 이중 횡선(橫線)이 나타나며, 당시까지 일관되게 부조되던 보살 입상과 원권의 범자가 생략되는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동종이 시각을 알리는 시종(時鍾)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동종과 강화동종 등 총 8구의 동종은 17세기 중 · 후반에 활발하게 활동한 승려 주종장 사인비구 등이 제작한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 4구(포항 보경사 서운암동종, 문경 김룡사동종 · 홍천 수타사동종, 안성 청룡사동종)는 사인 · 태행 · 지준 등 수장들의 공동 작업으로 제작된 작품이며, 3구(서울 화계사동종, 통도사동종, 의왕 청계사동종)는 사인이 독자적인 유파를 구성한 이후에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1구(강화 동종)는 사인을 계승한 후배 장인이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조선 후기 사원 경제사를 비롯하여 17세기 중 · 후반에 활동한 승려 주종장의 계보 및 작업 과정, 그리고 양식의 변화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와 고려 동종을 계승한 전통 양식 계열의 동종으로, 사실적인 종뉴의 표현, 볼륨감과 균형미가 있는 종신, 그리고 종신을 장식한 아름다운 문양 등에서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