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는 성불사(成佛寺)의 말사였다. 견불사(見佛寺)·영운사(靈雲寺)·영은사(靈隱寺)라고도 한다.
예성강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강서사라 하였고, 절에서 주위를 보면 부처를 보는 듯한 경치라 하여 견불사라고도 하였다.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이 양씨(梁氏) 성을 가진 부자에게 권하여 그 집을 절로 삼았다.
고려 때에는 대각국사의천의 제자로 경전에 밝고 시문에도 능했던 혜소(惠素)가 주지로 있었기 때문에 김부식(金富軾) 등을 비롯한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았으며, 1092년(현종 9)선종의 왕태후가 이곳에서 천태종 예참법(禮懺法)을 1만일 동안 열었던 사실로 미루어보아 천태종의 종찰(宗刹)이었던 국청사(國淸寺)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세조는 원각사(圓覺寺)에 있던 장륙불(丈六佛)을 이 절에 옮겨두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중창하였고, 1651년(효종 2) 다시 소실되었으나 4년 뒤 중창하였다.
당우로는 법당인 대웅전과 승당(僧堂)이 있다. 대웅전은 1662(현종 3)∼1722년(경종 2) 사이에 중창한 건물로 고색의 멋이 풍기는 건축물이다. 문화재로는 칠층석탑이 있다.
기단부 하대중석에 새긴 연화문과 상대중석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비롯하여 각층의 옥신(屋身)에는 불좌상이 새겨진 화려한 탑이다. 이 밖에도 뜰 앞에는 고탑·사적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