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흥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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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불교
유적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신덕왕후 강씨의 명복을 빌기위해 창건된 사찰.
이칭
이칭
신흥사(新興寺)
유적/건물
건립 시기
1396(태조 5)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돈암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흥천사(興天寺)는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태조의 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직할 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末寺)이다. 조선 전기에 폐사되었다가 1669년(현종 10), 정릉(貞陵)을 새로 꾸미면서 능 밖으로 절을 이건하고 신흥사라 이름하였다. 1865년(고종 2)에 다시 흥천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목차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신덕왕후 강씨의 명복을 빌기위해 창건된 사찰.
내용

흥천사(興天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 조계사주1이다. 1395년(태조 4)에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정릉주2 능 동쪽에 170여 칸의 절을 세워 흥천사라 칭하였다. 창건 후 조계종의 주3으로 삼았으며 좌선(坐禪)하는 것을 항규로 삼았다. 1398년 6월에는 왕명으로 절 북쪽에 3층 사리각과 주4을 세웠다.

흥천사는 정릉의 능침사(陵寢寺)로 매 신덕왕후의 기일에 기신재(忌神齋)가 주5. 그러나 1408년, 의정부(議政府)의 건의에 따라 이 절을 화엄종(華嚴宗)에 귀속시키는 한편, 태평관(太平館)을 철거한 뒤 그 밭과 노비를 절에 이양하였다. 1409년 정릉을 헐고 신덕왕후를 도성 밖으로 주6 정릉 능침사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흥천사는 정릉과 별개로 광화문 밖 육조 거리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진신 주7주8 도성 안에 창건된 대표적 왕실 사찰이라는 주9은 계속 유지되었다. 1424년(세종 6)에 불교 7개 종파 중 조계종(曹溪宗) · 천태종(天台宗) · 총남종(摠南宗)의 세 종파를 선종(禪宗)으로 합하면서 흥천사를 선종의 본산격인 선종 도회소(禪宗 都會所)로 지정하였다. 이때 교종 도회소(敎宗都會所)로는 흥덕사(興德寺)가 지정되었다.

1429년, 왕명으로 절을 크게 주10 1435년, 사리각을 중수하였으며 1437년 9월, 대장경(大藏經)을 봉안하였다. 1441년 3월, 이 절의 중수공사가 끝나자 5일 동안 주11를 개최하였다. 1443년 4월, 회암사(檜巖寺) 주12로 있던 만우(卍雨)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다.

1469년(예종 1), 명나라 왕과 왕후가 불번(佛幡)을 만들어 보냈으므로 이 절에 봉안하였다. 1480년, 절을 다시 중수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내원당(內願堂)을 이 절로 옮겼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에 화재로 절이 소실되고, 이때 화를 면했던 사리각도 1510년(중종 5), 유생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 폐사되었다. 흥천사에 걸려있던 대종(大鐘)만은 덕수궁(德壽宮)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남아 있다.

1569년(선조 2), 왕명으로 함취정유지(含翠亭遺址)로 절을 옮겨 지었다. 이후 절의 내력이 상세하지 않다가 2016년, 흥천사 극락보전(興天寺 極樂寶殿) 해체 수리 공사에서 「건륭 3년 명 상량문」(1738년(영조 14)), 「삼각산 신흥사 법당 개건 상량문」(1794년(정조 18)), 「한양 동삼각산 신흥사 대웅전 중창 상량문」(1853년(철종 4))이 발견되고, 주13에서 「신흥사 중수 상량문」(1865년, 고종 2)이 발견되었다. 이 4건의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면서 흥천사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능과 가까운 곳의 함취정 터에 세워진 작은 절은 1669년(현종 10), 신덕왕후가 복위되어 정릉이 새로 꾸며지면서 석문(石門) 밖으로 옮겨 세우고 ‘신흥사(新興寺)’라 이름하였다. 이어 1738년(영조 14), 법당 기둥을 세우고 주14를 올렸으며 1794년(정조 18), 법당을 주15. 1853년(철종 4)에는 극락보전을 주16 단청(丹靑)을 칠하고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후원으로 극락보전을 중수하였다. 1865년(고종 2), 대방을 중창하면서 흥천사로 개칭하였다. 이에 1980년대까지도 절 부근에서는 신흥사와 흥천사의 이름이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흥천사와 관련하여 흥천사명 동종과 흥천사 금동 천수관음보살 좌상(興天寺 金銅 千手觀音菩薩 坐像)이 보물로 지정된 바 있다. 흥천사 극락보전, 흥천사 명부전(興天寺 冥府殿), 흥천사 아미타불도, 흥천사 지장시왕도, 흥천사 비로자나삼신 괘불도 및 괘불함, 흥천사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 경판(興天寺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 經板), 흥천사 현왕도,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 흥천사 극락보전 도량신도, 흥천사 극락보전 신중도, 흥천사 천룡도, 흥천사 만세루 아미타불회도, 흥천사 만세루 신중도, 흥천사 만세루 제석천도, 흥천사 도량장엄번, 흥천사 목조 여래 좌상, 흥천사 목조 보살 좌상, 흥천사 명부전 석조 지장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흥천사 목조 관음보살 삼존상 및 복장유물, 흥천사 시왕도, 흥천사 약사불도, 흥천사 조왕도, 흥천사 약사여래 좌상 및 복장유물은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대방은 등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현종실록』
흥천사 극락전 상량문 일괄
흥천사 대방 상량문 일괄

단행본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寺刹全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탁효정, 『조선왕릉의 사찰』 (역사산책, 2021)
주석
주1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주2

집 따위를 지음. 우리말샘

주3

일종(一宗), 일파(一派)의 본종이 되는 큰절. 각 말사(末寺)를 통할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31 본산제였으나 광복 후 폐지되고 현재는 25 본사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말샘

주4

부처의 사리를 모셔 둔 탑. 우리말샘

주5

베풀어져 행해지다. 우리말샘

주6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다. 우리말샘

주7

석가모니의 유골. 후세에는 화장한 뒤에 나온 구슬 모양의 것만 이른다. 우리말샘

주8

신주(神主)나 화상(畫像)을 받들어 모시다. 우리말샘

주9

절의 자격이나 등급. 문적(門跡), 본사(本寺), 별원(別院), 말사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0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치다. 우리말샘

주11

불상이나 경전을 받들어 모시거나, 절이나 탑 따위를 창건하였을 때 이를 기념하여 여는 법회. 우리말샘

주12

절을 주관하는 승려. 우리말샘

주13

절에서 여러 승려들이 함께 거처하며 식사하는 방. 우리말샘

주14

작은 들보의 하중을 받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른 큰 들보. 우리말샘

주15

고쳐 세우다. 또는 고쳐 짓다. 우리말샘

주16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짓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양혜원(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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