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천사 금동 천수관음보살 좌상 (서울 )

조각
작품
국가유산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금동천수관음상.
작품/불상
창작 연도
고려 말~조선 초
소장처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서울 興天寺 金銅千手觀音菩薩坐像)
분류
유물/불교조각/금속조/보살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6년 02월 22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 (돈암동, 흥천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서울 興天寺 金銅千手觀音菩薩坐像)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금동천수관음상이다. 손이 42수가 표현되어 있는 국내에 전하는 매우 희귀한 천수관음상이다. 조각 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천수관음보살상의 매우 드문 작례로서, 밀교계 천수관음상의 도상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흥천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금동천수관음상.
내용

흥천사 극락보전에 소장되어 있는 불상으로, 손이 42수(手)가 표현되어 있는 국내에 전하는 매우 희귀한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이다. 천수관음은 많은 손과 다양한 지물(持物)로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빠짐없이 구제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의 표현 중 하나이다.

천수관음을 조각상으로 표현할 때에는 천수를 40수나 42수로 조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동아시아에서 천수관음 신앙은 밀교가 발달했던 일본은 물론이고, 순수 밀교적 요소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관음신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천수관음 신앙은 통일신라 초에 관련 경전이 유입된 이후 전해진 것으로 보이고, 관음보살상의 얼굴이 11개이거나 팔이 6개인 조각상은 통일신라시대에도 제작되었으나, 천수관음상으로 남아 있는 예는 거의 없다.

고려 후기에는 국가적인 재난을 물리치기 위해 천수관음을 보인 법석(法席)이 열린 것으로 보아, 천수관음상과 천수관음도(千手觀音圖)가 상당수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소수의 작품만 현전하고 있다.

고려시대 조각상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金銅十一面觀音菩薩坐像)과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된 철조천수관음보살좌상(鐵造千手觀音菩薩坐像)이 대표적이다.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의 제작 연대는 이 상이 처음 제작된 배경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흥천사가 건립되었던 14세기 말 당시 흥천사에서 조성 · 봉안된 것인지, 흥천사를 건립하면서 고려시대의 다른 사찰에 봉안되어 있었던 상을 이안(移安)하여 봉안한 것인지, 아니면 이후 어느 시기에 흥천사로 옮겨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전하지 않는다.

다만, 1894년(고종 31)에 작성된 「삼각산흥천사사십이수관세음보살불량시주(三角山興天寺四十二手觀世音菩薩佛糧施主)」 현판 기록을 통해 적어도 19세기부터 흥천사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형태 및 특징

길고 세장(細長)한 보관(寶冠)을 쓰고, 약간 길게 표현된 상체에 잘록한 허리를 지니며, 목걸이과 귀고리, 가슴과 배, 다리 부분까지 장식하고 있는 영락(瓔珞)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이러한 조각 양식 및 특징을 고려하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보살의 몸에는 긴 손들이 좌우로 각각 21수씩 붙어 있고, 길고 유려하게 묘사된 손가락들은 각기 다른 수인(手印)을 표현하고 있다. 조성 당시에는 합장한 두 손을 제외한 모든 손에 각기 다른 지물을 들고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왼쪽 20수 가운데 10수, 오른쪽 20수 가운데 1수에만 지물이 남아 있다.

현재 소실된 이 지물들은 『대비심다라니(大悲心陀羅尼)』, 『천수경(千手經)』 등 천수관음(千手觀音) 계통 경전에서 규정하는 천수관음의 지물 및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과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철조천수관음보살좌상의 예를 통해 복원해 볼 수 있다.

흥천사 천수관음상은 중국의 금동 다비(多臂) 보살상(菩薩像)이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의 천수관음상에 비해, 팔의 접합 방식이 매우 조악한 편이다. 즉, 팔을 고정시키기 위해 부은 용동(溶銅)이 매우 거칠게 엉켜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이 제작 당시의 모습인지, 아니면 후대에 보수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제작 · 봉안 이후의 어느 시기에 팔이 파손되자 이를 보수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용동을 주입하면서 생긴 흔적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의의 및 평가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수관음상의 매우 드문 작례(作例)이다. 따라서, 이 시기 관음신앙 연구에 중요할 뿐 아니라, 각 손에 들고 있는 지물을 통해 밀교계 천수관음보살의 도상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2016년 2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대고려 918 · 2018, 그 찬란한 도전』(국립중앙박물관, 2018)
정은우, 『고려후기 불교조각 연구』(문예, 2007)

논문

문명대, 「흥천사 사십이수 천수천안 관음보살상의 도상특징과 편년연구」(『강좌미술사』 49,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7)
주수완, 「흥천사 천수관음상의 제작기법에 대한 고찰」(『강좌미술사』 49,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17)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집필자
하정민(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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