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쯤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칠보사연혁(七寶寺沿革)』에 따르면, 이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은 보물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경기도 광주의 영창대군묘(永昌大君墓) 부근에 있던 봉은사(奉恩寺) 말사 법륜사(法輪寺)에 봉안되었던 삼존(三尊) 중 하나이고, 20세기 초 본존불(本尊佛) 비로자나불좌상은 서울 지장암으로, 석가여래좌상은 서울 칠보사로 각각 이안(移安)되었다고 한다.
법륜사는 영창대군의 원찰이었다. 1661년(현종 2) 현종의 폐불(廢佛) 정책에 의해 자수사 및 인수사가 폐사되자, 두 불상이 법륜사로 이안되었던 것이다.
비로자나불이 본존이고, 석가불이 협시(脇侍)인 삼존불(三尊佛) 구성으로 볼 때 석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盧舍那佛)로 구성된 삼신불(三身佛)로 이루어진 삼존이었던 듯하다. 지장암 비로자나불과 칠보사 석가불은 그 삼신불을 구성하고 있던 주존불(主尊佛)과 우협시불(右脇侍佛)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칠보사 대웅전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본존보다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배치되어 삼존상을 이루고 있다.
2014년 11월에 이루어진 불상 복장물 조사에서 은제 후령통(候鈴筒), 경전과 다라니(陀羅尼)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중 녹색 비단에 붉은 글씨로 적은 발원문(發願文)에는 대단월(大檀越)로서 정묘생(1567년) 대비(大妃) 김씨(金氏)가 발원하여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고 있다. 여기서 대비 정묘생 김씨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은데, 선조의 왕비이자 영창대군의 모후(母后)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로 추정되고 있다.
칠보사 석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복장 발원문에서는 조성 연대를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복장물 중 전적류는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동일 판본이며, 후령통도 지장암 불상과 동일한 크기와 구성을 보인다. 따라서 칠보사 석가여래좌상은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같은 시기에 동일한 인물들에 의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에서는 1622년(광해군 14) 만들어진 「석가비로불원문(釋迦毘盧佛願文)」이 발견되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1622년 광해군의 왕비인 장열왕후가 발원한 것으로 현진(玄眞), 응원(應元), 수연(守衍), 법령(法玲), 청허(淸虛), 인균(印均), 승일(勝一) 등 13인의 조각승이 참여해 비로자나불 2존, 석가여래 3존, 노사나여래(盧舍那如來) 2존, 미타여래(彌陁如來) 2존, 관음보살 1존, 대세지보살 1존 등 총 11존의 불상과 불화 5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제작된 11존상 중에서 현재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안동(安東) 선찰사(仙刹寺) 목조석가여래좌상(木造釋迦如來坐像)이 조사되어 보고되었다. 즉, 비로자나상 1구와 석가상 2구가 발견된 것이다. 발견 상황으로 볼 때 1661년(현종 2) 자수사와 인수사의 폐사 이후 11구의 존상들은 인연이 있는 전국의 사찰로 흩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의 조성 연대를 알려주는 결정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본 불상이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조성되었음을 고려하면, 그 조성 시기도 1622년 무렵일 것이고, 칠보사 석가여래좌상은 3존의 석가여래상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 불상 또한 현진을 수조각승(首彫刻僧)으로 하여 응원, 수연, 법령, 청허, 인균, 승일 등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 양식으로 보면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수조각승인 현진의 작풍이 가장 강하게 표현되었다. 현진은 1610년대부터 1630년대까지 경상도 남부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불상 제작을 주도한 17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조각승 중 한 사람이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높이가 117㎝이며 머리와 상반신을 앞으로 숙인 자세에, 오른손을 내려 땅을 짚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手印)'을 결하였다. 머리에는 중심계주(中心髻珠)와 정수리의 정상계주(頂上髻珠)를 표현하였고, 얼굴은 폭이 넓고 각진 턱이 강조된 약간 긴 직사각형의 형태이며, 불상의 신체는 어깨가 넓고 당당하다.
대의(大依)는 오른쪽 어깨를 감싸 돌려 입은 변형 편단우견(偏袒右肩)이며, 대의 안에 승기지(僧祇支)를 가슴 부분까지 올려 입었다. 이 불상의 왼쪽 어깨 측면에는 대의 주름이 중앙으로 넓게 흘러내려 U자형 무늬를 이루고, 그 U자형 좌우에 끝부분이 동그랗게 말린 좁고 긴 주름이 합쳐진 독특한 주름이 나타난다.
넓적한 얼굴과 각진 턱, 왼쪽 어깨 측면의 주름 모양,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이 넓은 자연스러운 대의 자락의 주름 등은 현진이 만든 불보살상(佛菩薩像) 다수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다. 전체 불상에서 현진 작품의 특징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찾을 수 있으므로, 이 불상 제작에 현진파(玄眞派)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제작 시기, 발원자, 봉안 장소 등을 분명하게 밝혀줄 발원문과 같은 중요 기록은 없지만, 근대의 기록과 복장물, 불상 양식 등을 고려해볼 때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조성된 것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1622년 장열왕후가 발원하여 왕실 원찰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한 11존 불상 중 하나임이 밝혀졌다.
조선 후기에 왕후가 직접 발원하여 조성한, 보기 드문 왕실 발원의 불상으로서 조선 후기 불교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자수사와 인수사에 11구의 불상을 함께 제작하면서, 당대 최고의 여러 조각승 유파의 수장들이 참여하여 불상을 제작하였던 매우 드문 사례이다.
17세기 조각승 유파의 합동작업 결과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 2018년 10월 3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