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창대군(永昌大君)의 묘소로,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에 위치한다. 1983년 9월 19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전주이씨 안성군 종친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영창대군(1606~1614)은 선조(宣祖)의 유일한 적자(嫡子)이다. 선조는 죽기 전에 유영경(柳永慶) 등 소북(小北) 일파와 함께 영창대군을 세자(世子)로 책봉하려고 논의하였으나, 광해군을 지지하던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大北) 세력에 의해 좌절되었다. 유영경 등이 유배지로 가기 전에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여 소북 일파가 사면 받고 다시 등용되었다.
그러나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 일망타진되었고 영창대군도 폐서인(廢庶人)이 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영창대군은 강화부사 정항(鄭沆)에 의해 9세의 나이로 살해되었고,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에 복작되었다.
영창대군묘는 인조반정 이후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아래에 이장되었다가 1970년대 초 경기도 성남시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71년 8월 지금의 위치(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로 다시 옮겨졌다.
묘역의 규모는 240㎡로, 봉분의 높이는 200㎝이고, 둘레는 15m이다. 곡장(曲墻: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과 호석(護石)이 없는 봉분 앞에는 묘비가 있고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으며, 그 앞에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체(階砌: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를 쌓았다. 아래 단에는 동자석(童子石)과 석망주(石望柱), 문석인이 각각 좌우로 배치되었다.
묘비는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이수(螭獸)와 비신이 동체(同體)이다. 이수에는 쌍룡(雙龍)이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었고, 비좌(碑座)는 연화문이 조각되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86㎝, 폭 61㎝, 두께 20㎝이며, 비의 앞면에는 ‘영창대군 증시소민공지묘(永昌大君贈諡昭愍公之墓)’라는 명문이 있다.
1970년대에 조성된 묘소이므로 봉분 주위의 석물들의 시대가 확연히 차이가 나며, 봉분 아랫부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둘레석을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