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존 ()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삼국통일전쟁에 참전한 장수. 대신.
이칭
이칭
천존(天尊)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679년(문무왕 19)
주요 관직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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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삼국통일전쟁에 참전한 장수. 대신.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천존(天尊)’. 649년(진덕여왕 3) 김유신(金庾信)과 함께 장군으로 도살성(道薩城)에서 백제장군 은상(殷相)의 군대를 물리쳤다.

660년(무열왕 7) 김유신 등과 함께 황산전투(黃山戰鬪)에 참가하였으며, 661년(문무왕 1)에 귀당총관(貴幢摠管)이 되었다.

663년에는 백제의 잔병을 거열성(居列城: 지금의 경상남도 居昌) · 거물성(居勿城: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과 장수 사이) · 덕안성(德安城: 지금의 충청남도 恩津) 등에서 격파하였다.

664년에는 이찬(伊飡)의 관등으로 김인문(金仁問)과 함께 당나라의 유인원(劉仁願), 백제의 왕자 부여 융(扶餘隆)과 더불어 웅진(熊津: 지금의 공주)에서 화친을 맺었다. 668년에는 각간(角干)으로서 대당총관(大幢摠管)이 되어 고구려정벌에 공을 세웠다.

671년에 당나라에 있던 의상(義湘)이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리라는 김인문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귀국하자,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을 하는 명랑(明朗)을 추천하여서, 그의 비법으로 당나라 병사를 물리치게 하기도 하였다. 679년(문무왕 19)에는 중시(中侍)가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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