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신

  • 역사
  • 인물
  • 남북국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의 사촌동생으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발해 토벌을 요청하였으며, 당에서 좌령군위 원외장군에 임명된 종실.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혜완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의 사촌동생으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발해 토벌을 요청하였으며, 당에서 좌령군위 원외장군에 임명된 종실.

생애 및 활동사항

성덕왕의 종제(從弟)이다. 726년(성덕왕 25) 당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가서 숙위(宿衛)로 머물면서 좌영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에 이르렀고, 734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당시 당나라의 현종에게 말하기를, 본국으로 돌아가 병마를 내어 말갈(靺鞨: 당시의 발해)을 토평하라는 부탁을 행하려 함에 환국을 기회로 부사(副使)의 직을 주면 기운을 내어 말갈의 근거지를 뒤엎고, 황우(荒隅: 동해)를 평안하게 하여 큰 이익이 되도록 하겠다고 하여 허락을 받았으나, 출사(出師)하지는 않았다.

성덕왕대는 당나라와 발해가 분쟁하던 시기로 732년 발해의 침공을 받은 당나라는 신라에 발해의 남쪽을 공격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신라도 이듬해에 군사를 보냈으나 큰 눈과 험로(險路)로 인하여 회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충신은 표(表)를 올려 재차 발해를 토벌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는 성덕왕대에 신라가 발해와 당나라의 분쟁을 이용하여 북진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 결과 신라는 735년에 정식으로 패강(浿江) 남쪽 영토의 영유권을 당나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동사강목(東史綱目)』

  • - 『해동역사(海東繹史)』

  • - 『책부원귀(冊府元龜)』

  • - 「신라 하대사회의 동요」(최병헌, 『한국사』3, 국사편찬위원회, 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