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경흥 출생. 본관은 김해(金海). 1945년경성고등학교(鏡城高等學校)를 졸업한 뒤 1949년 일본 동경대학(東京大學) 역사철학과에서 연구생으로 수학하였다.
1949년 재일거류민단 기관지 「민주신문」 편집국장, 1950년 일본 「요미우리 讀賣新聞」 서울특파원, 1961년 혁신계의 「민족일보」 논설위원을 지냈고, 1955년에는 재일 거류민단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 민주혁신당 대변인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1960년 한국사회당 대변인, 1961년 통일사회당 국제국장, 1970년 동당 부위원장을 거쳐, 1971년 통일사회당, 1981년 사회당, 1985년 사회민주당 위원장에 각각 선출되었다. 1971년에는 통일사회당 후보로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우리 나라의 진보정당 발전을 위하여 진력하는 한편, 우리 나라 사회민주주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1969년 통일사회당을 우리 나라 최초로 사회주의 인터내셔날(SI)에 정회원으로 가입시켰고, 1970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사회당기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4년 영국의 윌슨수상이 주재하는 세계 사회당기구 지도자회의, 1977년 동경에서 개최된 사회주의인터내셔날지도자회의, 1980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사회주의인터내셔날대회 등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민주화를 역설하였다. 그는 군사정권하에서 우리 나라의 민주화운동에도 기여한 바가 컸다.
1969년 삼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약하였고,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였으며, 동년 함석헌(咸錫憲)·김영삼(金泳三) 등과 함께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 대표위원을 역임하였다. 그 과정에서 1971년 「반공법」위반으로, 1975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되었다.
저서로는 「민족학생운동의 이념」·「떳떳한 민족으로 살자」·「일본 민주화의 좌절」·<새 역사의 구상>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