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이며,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의 길을 걷게되었다. 김종필(金鍾泌)계열의 핵심으로 삼선개헌 강행을 반대하였고, 1969년 개헌파동에 적극 개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1961년 경상남도체육회 회장을 시작으로, 1966년 아시아 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겸 세계아마추어복싱연맹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71년에는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직, 1973년 소련 모스크바 세계대학생경기대회 한국대표단 단장, 1974년 국민체육진흥재단 이사장, 1975년 세계아마추어복싱연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77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역임하는 등 한국체육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체육인으로서 활동하다가 1983년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