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5월 22일 출생하여, 유도 명문학교인 대구달성보통학교와 대구계성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에는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유도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1955부터 1957년까지 도쿄대학 법학부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국제법 과정을 수료하였다.
1958년 대구에서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같은 해 대한체육회 회장 서리를 거쳐 이듬해에는 대한반공청년단 단장직에 취임한 후 1960년 정부통령 3 · 15부정선거에 개입하게 되었다. 1959년 6월 정 · 부통령후보를 지명한 자유당은 그 뒤 치밀하게 선거조직을 확대해 나가면서 전 공무원 및 경찰력을 선거운동에 투입하고 막대한 자금의 살포와 폭력배 조직까지 동원하였다. 이때 선거전위대로 동원된 폭력배 조직이 대한반공청년단이었다.
선거에 동원되었던 정치폭력배 조직(정치깡패)들은 이후 4 · 19혁명과 5 · 16군사정변을 거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1960년 부정선거 관련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난 뒤, 이듬해 5 · 16군사정변과 동시에 군사법정에서 20년형을 언도받고 8년 3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였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제8대 이후 계속 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대구 남구에서 4선을 기록하였다. 1976년 신민당 최고위원, 1987년 신민당 고문을 거쳐 1988년 신한민주당 총재로 재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이전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체육인으로서 활동하여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1979년), 범태평양유도연맹 회장(1980년), 유도고단자회 회장(1993년), 대한체육회 고문(1993년), 체육인동우회 이사장(1993년)을 역임하였다. 2000년에는 한국의 유도발전에 힘쓴 공로로 유도 명예 10단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