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운동을 범국민화하여 학교체육 및 사회체육의 진흥으로 국민의 체력향상과 건전하고 명랑한 기풍을 진작시킴과 아울러, 아마추어경기단체를 통할지도하고 우수한 경기자를 양성하여 국위선양을 도모함으로써 민족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스포츠를 통한 국제친선과 세계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서양의 근대경기가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895년 2월 고종이 「신교육령」을 공포하고 근대적인 의미의 교육기관이 개설되면서부터였다. 특히, 서양선교사와 외국인교사들에 의하여 각급학교에서 운동회가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부 개화된 지도계층에 생소한 경기종목이 전해졌다.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가 창간되고 10일부터 3일간 변봉현(邊鳳現)이 『동아일보』에 「체육기관의 필요를 논함」이라는 논설을 실어 체육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이에 동아일보사 간부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사회일반의 관심이 모여 체육회의 발기준비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때마침 동경(東京)유학생야구단의 모국방문경기가 개최되면서 야구 등 몇 개 종목의 경기가 사회일반에 보급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산발적인 운동경기는 3·1운동의 민족적 자주독립의식이 고조되면서 일제에 대한 항쟁의 수단으로 조직적인 체육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1920년 6월 16일 ‘조선체육회’ 창립을 위한 발기인회가 고원훈(高元勳)·이동식(李東植)·장두현(張斗鉉)·변봉현 등 47인이 시내 명월관에 모인 가운데 열렸고, 10인의 창립준비위원을 선출하였다.
같은 달 26일 창립취지서와 규칙서를 제정한 뒤, 7월 13일 인사동에 있는 중앙교회에서 70여 명이 모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초대회장에 장두현을 선출하였다.
이는 체육계의 크나큰 경사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각·자주·자활의 기치를 높이 들게 하여 체육을 통한 자주독립의 기반을 구축하게 하였다.
11월 4일 그 첫 사업으로서 당시 배재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전국체육대회의 기점이 되는 행사로,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는 행사였다.
이후에도 전조선축구대회(1921)·전조선정구대회(1921)·육상대회(1924)·빙상대회(1925) 등 각종 경기대회가 개최되었고, 조선체육회가 단독으로 개최하거나 경기단체의 협력을 얻어 공동으로 개최함으로써 창립 이전의 무원칙적인 대회운영을 완전히 탈피하였다.
1934년 종목별로 개최하던 경기대회를 통합하여 전조선종합경기대회로서 매년 추계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로써, 명실상부한 전국체육대회는 민족불굴의 투혼을 불사르는 체련의 장이 되었다. 그러나 1938년 7월 4일 조선체육회는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강제해산되었다.
일제는 1942년 2월 관제 조선체육진흥회와 조선학교체육진흥회를 결성, 발족하여 광복이 되기까지 체육을 통제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1월 26일 조선체육동지회를 중심으로 하여 조선체육회가 부활되었고, 그 사이 중단되었던 전국체육대회가 1945년 12월 27일 자유해방경축전국종합경기대회로 부활, 개최되었다.
한편, 조선체육회는 올림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국내올림픽위원회의 결성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의 가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하여, 1947년 7월 15일 조선체육회 안에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설치하였다. 같은 해 6월 20일 대한올림픽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정식 가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 땅의 체육활동이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전기가 마련되었고, 1948년 7월 제14회 런던올림픽경기대회에 광복 후 최초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하였다.
정부가 수립된 뒤 1954년 3월 16일 조선체육회는 임의단체에서 「민법」에 의한 사단법인 대한체육회로 인가되었다. 1966년 6월 30일 현재의 대한체육회관이 개관되었고, 태릉에는 국가대표선수 훈련의 요람인 선수촌(현재는 훈련원)이 세워졌다.
그 뒤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를 서울에 유치, 개최하는 역사적 체육행사를 계기로, 지금까지 우수선수 양성을 위주로 일관해 오던 체육행정이 국민의 건강증진과 여가선용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국민체육진흥책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1982년 12월 31일 개정, 공포된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사단법인 대한체육회는 1983년 1월 1일 특수법인으로 되었다.
(1) 대한체육회(KASA): 최고의결기관으로서 대의원총회가 있었는데, 이는 38개 정가맹경기단체의 회장단에서 각 1인의 대의원이 참석하여 구성되는 회의기구로 정기총회와 임시총회로 구분, 개최되었다. 대의원총회는 대한체육회의 회무를 심의, 결정하며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최고집행기구인 이사회는 총 20인 이상 45인 이내로 구성되고, 주요 업무를 심의, 결정하고 그 집행의 권한을 가졌다.
또한, 대의원총회 및 이사회의 심의, 결정된 사항에 대한 사무행정처리를 위한 사무처와 훈련원을 두었다. 이사회는 체육회의 업무를 합리적으로 처리, 추진하기 위하여 자문기구인 각종 위원회를 두었다. 위원회는 정관상 위원회와 특별위원회로 대별되어 있으며, 분야별 전문인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2) 경기단체: 1920년 조선체육회 창립 당시 9개 회원단체이던 것이 광복 후 26개 단체가 되었고, 그 뒤에 많은 경기종목이 보급되어 1998년 말 당시 16개 시도지부와 47개 경기단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한체육회에 가맹된 47개 경기단체의 집행부 임원은 체육회의 인준을 받아 취임하며, 연도별 사업계획과 예산·결산 및 주요 사항에 대하여는 사전승인이 전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지도감독 기능을 통하여 중앙경기단체는 운동경기를 널리 보급하여 국민의 체력향상과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시키고 있다. 또한, 중앙경기단체는 전국 규모의 연맹체를 설치, 운영하고 각종 경기대회를 주관한다.
(3) 시·도지부 및 해외지부: 지방체육을 육성, 보급하기 위하여 대한체육회 산하에 15개 시·도지부를 두었다. 시·도지부에는 종목별 시도단위의 경기연맹이 가맹되어 있고, 그 가맹단체의 수는 시도별로 달랐다. 시·도지부도 대한체육회 조직과 같이 가맹경기단체로부터 추천되어 구성되는 대의원총회가 회의체로서 최고의결기관이었고, 이사회가 최고집행기구였다.
또한 그 산하에 각종 위원회 및 사무행정을 수행하는 사무국을 두었다. 그리고 해외지부는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체육을 통한 상호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결성, 운영되었다.
일본·미국·캐나다·독일·홍콩·스페인·브라질·오스트레일리아·아르헨티나·파라과이·괌 등 11개 지부로, 해외지부의 숫자는 점차 늘어났다. 이와 같은 해외지부는 매년 고국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육대회에 많은 선수단을 참가시켜오고 있다.
(4) 대한올림픽위원회: 대한체육회 정관상 특별위원회로서 1968년 정부의 체육기구 일원화 방침에 따라 체육회에 통합되었고, 대한체육회와 일체양면의 성격을 띠지만,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독립된 상임위원회와 위원총회를 구성하여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실무행정을 대한체육회 사무처와 병합하여 운영해왔다. 2009년 6월 대한올림픽위원회가 대한체육회에 통합되었다.
(1) 국가대표선수 강화훈련: 지난날 우리나라의 체육은 우수선수양성 위주의 사업을 전개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체육활동이 민족정신 고양을 주목적으로 하였다면, 광복 후 근대에 이르기까지는 국내적으로는 체육의 보급을 통한 체육인구의 저변확대와 체육을 경시해 오던 사고의 변혁을 추진해 왔고, 국제적으로 자주독립국가로서 외교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국위선양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체육인을 주축으로 한 우리나라의 체육은 급속한 발전을 보여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와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 등 세계적인 스포츠경기를 각각 서울에 유치하여 개최하였다.
이러한 양대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하여 모든 국민이 일심단결하여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고, 대한체육회는 우리의 땅에서 개최되는 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획득하기 위하여 태릉훈련원과 진해훈련분원 등에서 국가대표선수의 강화훈련에 총력을 경주, 금메달 12개로 세계 4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2) 스포츠의 과학화: 우수선수를 양성하고 국민체위향상을 위하여 1980년 12월 29일 스포츠과학연구소를 설치하여 스포츠의 과학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연구소는 태릉훈련원 내의 조직체로 구 한국체육대학 건물을 연구실 및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으며, 최신 스포츠과학 기자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구원이 심리·역학·생리·전산·의무 등 분야별로 종사하고 있다.
또한 대표선수의 체력관리와 훈련결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처방하고, 스포츠자료를 국제정보자료 유통기구와 연계하여 최신자료를 입수, 보급하고 있어 스포츠과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 훈련시설 확충 및 보수: 1966년 6월 태릉에 대표선수훈련장이 개설된 이래 선수훈련장은 상당히 많이 신축되었다.
태릉에는 607명의 선수를 수용할 수 있는 선수숙소와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육상경기장을 비롯하여 실내빙상경기장 등 8개 동의 실내체육관이 갖추어져 있고, 국제스케이트장과 인조잔디구장 등 옥외훈련시설이 7개이다. 또한, 1985년 9월 16일 체육부로부터 인수한 구 한국체육대학의 시설을 개보수하여 활용하고 있다.
태릉훈련원은 대지 9만 4,225평에 건물 31개 동으로 연건평 1만 5,583평이고, 진해에 있는 진해훈련분원은 250명을 수용하는 선수숙소 2개 동과 실내체육관 1개 동, 육상장 및 천연잔디축구장 등 대지 3만 4,704평에 연건평 2,432평 규모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이 밖에 온양에는 온천수를 이용한 실내수영장이 있다. 선수들의 정서함양과 여가선용을 위한 종합레저시설인 선수회관이 태릉에 있다.
(4) 전국체육대회 및 전국소년체육대회개최: 1920년 11월 조선체육회 창립 후 제1회전조선야구대회를 시작으로 개최된 전국체육대회는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개최되었다.
그러나 조선체육회가 강제해산되던 1938년 제1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광복 후 1945년 12월 제26회 대회인 자유해방경축전국종합경기대회를 열어 전국체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 뒤에 1955년 제36회 대회부터 처음으로 성화가 등장하여, 강화도 마니산에서 채화되어 대회장까지 봉송되었다. 1972년 제53회 대회부터는 전국소년체육대회가 분리되어 청소년의 체육활동을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전국체육대회는 우리나라 스포츠진흥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1957년 제38회 대회부터는 지방을 순회하여 개최함으로써, 지방체육시설의 증대는 물론, 체육인구의 저변확대라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1986년 6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67회 전국체육대회는 34개 종목에 2만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또한 앞서 5월에 개최된 제15회 전국소년체육대회는 종래와 같이 한 곳에서 개최하지 않고 전국 각 시·도에 분산, 개최하는 등 지속적인 발전을 꾀함으로써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소년체육대회는 명실상부한 우리 민족의 스포츠 잔치로서의 면모를 더 한층 과시하고 있다.
(5) 국제체육교류 우리나라가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한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 이래로 그 동안 계속 참가하여 지난 제24회 서울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12개를 획득하여 종합 4위를 차지하는 등, 국제스포츠사회에서의 한국의 위치는 크게 향상되었다.
우리나라는 1999년 12월 말 현재까지 올림픽에서 금메달 39개 외 은메달 42개, 동메달 47개를 획득하여 스포츠강국으로 부상하게되었다.
또한 1986년에는 우리의 가맹경기단체 수는 세계스포츠기구에 34개 종목, 아시아스포츠기구에 30개 종목에 이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국제스포츠기구에 121명의 국내체육인사가 참여하여 국제스포츠사회에서의 지위향상을 꾀하고 있었다.
그 결과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제24회 올림픽대회경기대회를 서울에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리고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경기대회와 1999년 강원도 용평 동계아시아경기대회를 치렀고, 2002년에는 부산에서 하계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
2009년 6월 24일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가 통합되어 대한체육회(Korean Olympic Committee)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대한체육회는 이사회, 대의원총회, 14개 위원회(정식), 사무처로 구성되어 있다. 사무처는 1사무차장 3본부(체육진흥본부, 국제협력본부, 선수촌운영본부) 1단(진천선수촌운영단) 1센터 2실 16부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체육회 산하에 56개 가맹 경기단체, 17개 시도체육회, 18개 해외지부를 두고 있다. 본관은 현재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방이동 88)에 있다.
2016년 3월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가 통합하여 통합 대한체육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