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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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검사, 한국반공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국회프락치사건과 진보당사건 등을 담당하며 보수우익의 대표 인사로 불린 법조인·정치인.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국회 프락치 사건|진보당 사건
  • 본관해주
  • 사망 연도2001년 7월 1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7년 11월 15일
  • 출생지평안남도 안주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3년
  • 홍현웅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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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검찰청 검사, 한국반공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국회프락치사건과 진보당사건 등을 담당하며 보수우익의 대표 인사로 불린 법조인·정치인.

내용

191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하여 1939년 일본와세다 대학에서 법학과를 졸업한 후, 해방 후인 1946년 제1회 판검사 특별임용시험을 통해 서울지검과 대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하였다.

좌익 전력자를 전향하도록 한 보도연맹 결성을 선우종원과 함께 주도하였으며 남로당의 김삼룡과 이주하를 체포했고, 국회 프락치 사건, 여간첩 김수임 사건, 조봉암의 진보당 사건 등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공안 사건을 담당하여 1950년대 반공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1960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에도 1966년 한국반공연맹이사, 신의주학생의거기념회장, 북한탈출동포돕기운동본부 부회장, 1971년 북한연구소 초대 이사장 등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인사로 활동하였다.

이 후에도 1975년 아시아반공연맹(APACL) 한국수석대표와 세계반공연맹(WACL) 한국수석대표, 1978년 사단법인 한국안보교육협회 이사, 그리고 1998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고문과 한국안보교육협회 이사장을 맡는 등 여러 보수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서강대 박홍 총장이 한국통신 노조 주사파 발언 사건으로 제소되자 노재봉, 이도형 등 70여명과 후원회를 결성하여 지원하였고, 권영해의 북풍사건을 변론하는 등 보수 우익 인사에 대한 지원에 힘썼다.

1977년 정일형이 3·1 명동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치러진 종로 중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제9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제11대에는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참고문헌

  • - 「오제도 회고록」(북한연구소, 『북한』, 1974)

  • - 대한민국헌정회 (www.rok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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