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조선 중기의 문신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를 소설화한 야담계(野談系) 고전소설로, 『잡기유초(雜記類抄)』에 실려 있다. 창작 시기는 본격적 야담이 등장하는 17세기 중·후반을 상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김하서는 젊은 시절에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중 한 아리따운 여인의 얼굴을 보게 된다. 순간 욕정(欲情)과 도학자적인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던 하서는 결국 여인을 뒤쫓게 된다.
여인은 1년 전에 과부가 된 양반집 규수였는데, 그날 밤 내방(內房)을 엿보던 하서가 발견한 광경은 놀랍게도 여인이 어떤 젊은 중과 희롱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의분을 느낀 김하서는 단검으로 중을 찔러 죽이고, 남편을 죽인 후 음행(淫行)을 일삼은 여인의 행동을 꾸짖지만, 여인이 자신은 겁탈당한 것이며 남편을 죽인 것도 중의 소행이라고 호소하자 그 말을 믿고 방을 나온다.
그런데 얼핏 잠이 든 김하서의 꿈에 여인의 남편이 나타나, 자신의 처와 중이 결탁하여 자신을 살해한 후 집 뒤의 대나무 숲에 암매장하고 사람들에게는 범한테 물려 갔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김하서로 하여금 여인의 얼굴을 보고 집까지 따라오게 한 것도 자신이 한 일이라고 하면서 원수를 갚아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과장(科場)의 시험 문제와 답을 가르쳐 준다.
하서는 귀신이 알려준 대로 답안을 작성해 장원급제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과부 집을 지나게 되는데 거기서 열녀문(烈女門)을 보게 된다.
그 내력이 야밤에 자신을 겁탈하려던 중을 칼로 찔러 죽인 여인의 절행(節行)을 기린 것이라는 말을 듣고, 김하서는 이튿날 수령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대나무 숲을 파헤쳐 남편의 시신(屍身)을 확인하게 한다. 모든 사실이 밝혀져 여인은 의금부(義禁府)로 압송되고 열녀문은 헐린다.
이 작품은 도학자를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는 민간적 상상력의 속성과 경향을 짐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의를 가진다. 소설 속에서 김인후는 근엄하기만 한 도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일시적으로 미색(美色)에 혹하여 갈등하기도 하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이를 잘 극복해 도덕과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 준다.
「김하서전」과 같은 야담계 소설에서는 실제 사실과의 일치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에 관한 인물전설에서도 확인되는, 김하서에 대한 민간의 친근감과 존숭(尊崇)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