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국평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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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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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산문.
내용

국문필사본. 목판본이나 활자본은 전하지 않고 필사본만 전하고 있다. 필사연대는 본문 끝에 부기한 간지로 보아 1779년(정조 3)의 기해 음 6월 4일로 추정된다. 한문본으로는 안정복(安鼎福)의 「여용국전(女容國傳)」(일명 孝莊皇帝粧臺紀功錄)이 전한다. 이 한문본은 국문본 「여용국평란기」를 안정복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용국평란기」는 우리의 옛 부녀자들이 사용하던 화장도구(化粧道具)를 의인화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으로 몇 가지의 교훈성을 드러낸 것이다. 화장도구를 부리는 주인공(婦女子)을 효장황제(孝莊皇帝)라 일컫고, 얼굴 단장하는 일을 나라 다스리는 일에 비유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장황제가 잠시 게으른 틈을 타서 적당(賊黨)들, 즉 구리공(垢裏公 : 낯의 때)·슬양(蝨癢 : 머릿이)·황염(黃染 : 이똥)·모송(毛鬆 : 눈썹 부분의 잔털)이 여용국(女容國 : 얼굴)을 침략해 들어왔다. 황제가 하루는 동승상(銅丞相 : 거울)이 충심으로 간하는 말을 듣고 나라 안을 살펴보니, 많은 도적의 무리들이 곳곳을 침범하였다. 이에 황제는 크게 놀라서 근심하였다.

이에 소쾌(梳快 : 얼레빗)·소진(梳眞 : 참빗)·유진(油眞 : 참기름) 등으로 하여금 슬양의 무리를 평정하게 하고, 섭강(鑷强 : 족집게)으로 하여금 모송을 토벌하게 하였다. 또한, 관청(盥淸 : 세숫물)·말연[磨零 : 비누]에게 명하여 구리공을 물리치게 하고, 양숙(楊叔 : 양칫대)으로 하여금 황염을 없애게 하였다. 이에 여용국을 침노한 적당들을 모두 평정하였다.

여용국이 평정된 뒤, 방취(芳臭 : 육향)·백광(白光 : 분)·백원(白圓 : 면분)·윤안(潤顔 : 곤지)·주연(朱鉛 : 연지)·검박서(檢博書 : 금박지)·납용(蠟容 : 밀기름)·차연(釵延 : 비녀)·사영(絲纓 : 모시실) 등으로 하여금 나라 안을 진정시켜 가다듬게 하였다. 이에 곧 다시 옛날처럼 강산이 화려하고 여러 고을이 윤택해져서 태평하게 되었다. 신하들의 공을 올바르게 논하여 황제가 상을 내리고 잔치를 베풀어 여러 신하가 즐기게 하였다. 또한, 신하들이 각각 맡은 바 직임을 부지런히 수행하니, 이로부터 여용국은 태평세월을 누리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글의 주제는 ① 군신간의 올바른 직임, ② 단장정아(端莊靜雅)해야 할 부녀자의 용모, ③ 인간성의 결함에 대한 풍자, ④ 이상적인 나라에 대한 동경 등으로 볼 수 있다. 한문본 「여용국전」과 내용은 거의 같다. 그러나 등장인물과 관직이 약간씩 다르고, 「여용국전」에 비해서 「여용국평란기」의 구성이 치밀하고 묘사가 상세하다.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와 더불어 규방생활의 도구를 의인화하여 인정기미를 훌륭하게 나타낸 우화적(寓話的)인 규방수필문학으로서 그 가치가 높다. 한편, 고려조의 가전체소설 및 조선조의 몽유록 등과도 접맥되는 조선조의 특이한 소설양식으로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수필문학연구』(최승범, 정음사, 1980)
『이조한문소설선』(이가원, 민중서관, 1961)
「여용국평란기소고」(최승범, 『장암지헌영선생화갑기념논총』, 형설출판사, 1971)
집필자
최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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