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국전 ()

여용국전
여용국전
고전산문
작품
조선 후기에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한문소설.
이칭
이칭
효장황제장대기공록
정의
조선 후기에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한문소설.
구성 및 형식

화장도구를 의인화한 가전(假傳)으로, ‘효장황제장대기공록(孝莊皇帝粧臺紀功錄)’이라고도 한다. 작자의 문집인 『순암집(順菴集)』의 「부부(覆瓿)」에 실려 있다.

원작자는 알 수 없다. 이 원본은 안정복이 지은 것인데, 원본의 내용 중 ‘이경’·‘복셩’ 등의 난역(難譯)의 한글을 그대로 둔 것으로 볼 때, 당초에 한글본을 안정복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용

여용국(여자얼굴)이 처음 설립되었을 때 열다섯이나 되는 위성국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효장황제(단정한 얼굴)의 경대에 관한 일을 맡았다. 동원청(거울)은 늘 황제의 좌우에 있어서 황제의 얼굴이 얌전하지 않거나 의관이 단정하지 못하면 반드시 말씀을 드려 경계하도록 하였다.

그 아래에는 열다섯 신하가 있는데, 태부 주련(연지), 소부 백광(분), 호치장군 양수(양치), 수군도독 관정(세수), 무위장군 포세(수건), 전전지휘사 포엄(휘건), 참군교위 마령(비누), 형부시랑 방취(육향), 총융사 윤안(곤지), 안무사 백원(면분), 도지휘사 납용(납유), 평장군 섭강(족집게), 도어사 차연(비녀), 전장군 소쾌(빗), 후장군 소진(참빗) 등이었다.

황제는 늘 이들의 도움으로 여용국을 잘 다스렸으나, 나라가 태평하자 점차 교만하고 안일해져서 도적들이 일어났다. 도적들의 괴수는 구리공(때)인데 이들은 먼저 광이산(귀)을 점령하고, 나중에는 오악산(이마·턱·코·좌우 광대뼈)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슬양(이)은 흑두산(머리)에 웅거하고 모송(잡털)은 아미산(눈썹)에 침입하였다.

이에 전후장군 소쾌(빗)와 소진(참빗)이 나가 슬양(이)을 잡고, 수전을 잘하는 관청(세수)이 나가 구리공(때)을 섬멸하고, 섭강(족집게)이 나가 모송(잡털)을 잡았다. 그러자 황제는 이들을 크게 상주고, 나라는 다시 아름답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화장도구를 의인화한 가전이다.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치세에 힘쓰면 나라가 태평하지만, 안일하면 나라가 어지러움을 풍유하고 있다.

참고문헌

『순암집(順菴集)』
『이조한문소설선』(이가원 교주, 교학사, 1984)
관련 미디어 (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