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암유고 ()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주대의 시 · 서(書) · 기 · 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박주대의 시 · 서(書) · 기 · 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원래 24권의 유고를 박주대의 아들 박면진(朴冕鎭)과 문인 김소락(金紹洛)·황재진(黃在鎭) 등이 수집해 김형모(金瀅模)·권박연(權博淵)·박우진(朴祐鎭)의 교정을 거쳐 간행하려던 중 일본 경찰에게 압수당해 불에 타버렸는데, 「창의통유문(倡義通諭文)」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 책은 그 뒤 손자 박희수(朴熙洙)가 김정모(金正模)·박근수(朴根洙)와 함께 다시 수습해 편책한 것이다. 1986년 영인·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6권 3책. 필사본.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950 수, 권3에 서(書) 92편, 권4에 잡저 2편, 서(序) 3편, 기(記) 5편, 발 7편, 상량문 7편, 축문 10편, 뇌사(誄辭) 2편, 제문 37편, 행기(行記) 1편, 권5·6에 부록으로 만사 102수, 제문 78편, 행장·묘갈 명·묘지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당시의 석학들과 수창(酬唱)한 것 이 대부분이다. 산수 천석(泉石)의 자연을 읊은 것도 많다. 「유거잡영(幽居雜詠)」·「재거잡영(齋居雜詠)」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명승고적을 찾아 읊은 「청량구절(淸凉九絶)」 ·「입희방산중(入喜方山中)」 등의 기행시가 매우 흥미롭다. 특히, 「구로영(九老詠)」과 「팔치영(八穉詠)」은 노농(老農)·노기(老妓)·치송(穉松)·치죽(穉竹) 등을 소재로 문학적인 묘사가 풍부하다.

또한, 석학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만이강년(輓李康秊)」·「만이만도(輓李晩燾)」는 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순국한 이강년과, 경술국치 때 24일간의 절식 끝에 순절한 이만도의 기절을 높이는 한편, 비분강개한 뜻이 담겨져 있다. 성정(性情)을 표출한 시의(詩意)가 비교적 청건(淸健)하고 준영(雋永)하다는 평이 있다.

서(書)는 김진린(金鎭麟)·김흥락(金興洛)·권경하(權經夏)·안호연(安浩淵)·황조하(黃肇夏)·곽종석(郭鍾錫)·권세연(權世淵)·이만계(李晩烓) 등 당시 영남의 석학·의병장들과 주고받은 편지로, 경전(經典)·시화(詩話)·시사(時事)에 관한 논술이 많다. 잡저 가운데 「동유록(東遊錄)」은 영해(寧海)의 관어대(觀魚臺)와 동해(東海)의 일출 광경을 구경하고 기록한 기행문이다. 「향교경장완문(鄕校更張完文)」은 예천향교의 폐단을 개혁하는 한편, 절목(節目)을 새로 규정하는 글이다.

서(序) 가운데 「역서일기서(曆書日記序)」는 『저상일월(渚上日月)』이라는 일기책에 붙인 서문이다. 저자의 아버지로부터 일기를 써 내려온 동기와 개요를 소상하게 기록하고, 자손들에게 계속 일기를 쓸 것을 부탁하면서 야사(野史)의 가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축문 가운데 「빙성산신축문(氷城山神祝文)」은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있은 뒤 청국인들이 구원병을 자칭하고 서울에 주둔해 있으므로 이 해 가을에 예천 지방민들이 보(堡)를 쌓고 산신에게 후환이 없도록 해달라는 축문이다. 제문 중에는 서낭당신·주산신(主山神)·동신(洞神)·가신(家神)·두신(痘神)에게 제사지내는 제문이 각각 들어 있는데,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관습으로 정월 대보름날에 행한 것이다. 민속신앙을 연구하는 데 자료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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