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천기(天紀), 호는 국암(菊菴). 함안 괴항리(槐項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별시위겸사직(別侍衛兼司直) 나위(羅緯)이며, 어머니는 서흥김씨(瑞興金氏)로 진사 김상호(金相浩)의 딸이다. 이전(李琠)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어머니 상을 당하였는데 왜란으로 남산리(南山里) 국수곡(菊垂谷)으로 빈소를 옮기고, 난 중에도 빈소를 떠나지 않고 있었는데, 왜적이 와서 칼로 그를 죽이려 하자 신주(神主)를 안고 아우와 몸으로 적을 막았다.
이에 왜적이 감탄하고 물러 가면서 나무에 ‘勿害羅孝子(물해나효자)’라고 썼다고 한다. 1595년 왜적에게 여러 고을이 함락되자 울분을 참지 못하여 ‘기천단(祈天壇)’을 쌓고 왜적이 소멸되도록 하늘에 빌었다.
1626년(인조 4) 유일(遺逸: 등용되지 않은 유능한 사람)로 천거되어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에 임명되고 이어 창원부교수(昌原府敎授)·유학교수 등을 역임했다. 함안 도산사(道山祠)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국암문집(菊菴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