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옻칠한 기물의 바탕 위에 나전 문양을 장식하는 일을 하던 장인. 나전칠기장·나전칠장.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나전 기법은 칠기의 표면을 장식하는 다양한 기법 중 하나로 우리 민족이 가장 선호하던 공예 기법이다. 문헌 기록을 통해 이미 고려시대 왕실용 기물을 담당하던 중상서(공조서)에 칠장과 나전장이 관장으로 예속되어 있었으며, 중국에 보낼 나전경함(螺鈿經函)의 제작을 위해 임시기구인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을 설치하였던 사실도 확인된다. 특히 1124년에 쓰여진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나전 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而螺鈿之工 細密可貴)”고 기록된 사실에서 고려시대 나전 기술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전장이 경공장으로 공조(工曹)에 2인, 상의원(尙衣院)에 1인이 배치되어 왕실에 필요한 나전 칠기를 제작하였다. 이 외에 임진왜란 이후 통제영(統制營)이 설치되었던 경상남도 통영(統營)에서도 진상용 나전 칠기를 제작하였다. 반면 칠장은 외공장(外工匠)과 경공장에 모두 소속되어 있었다. 이는 옻칠이 목가구 및 목공예품뿐만 아니라 선박 등 군수품에까지 널리 사용된 데 비해 나전은 왕실이나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에 제한적으로 사용된 최상급 재료와 기법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대전회통(大典會通)』
- 『산업과 예술의 기로에서』(최공호, 미술문화, 2008)
- 『나전장』(정해조, 민속원, 2006)
- 『한국의 목공예』(이종석, 열화당, 1986)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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