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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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덮을 수 있는 접시에 높은 대가 달린 제사용 그릇.
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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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장처
  • 용도
  • 재질
  • 제작 시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7년
  • 최영숙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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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접시에 높은 대가 달린 제사용 그릇.

개설

조선시대 제례에서 물기가 있는 제물(祭物)을 담는 제기(祭器)로 사용한 목제 그릇으로, 접시 형태에 높은 대가 달려 있다.

연원 및 변천

목두 형태의 그릇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토기나 칠기 중에 간혹 보이며,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 지역의 고분에서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대부분이 토기로 만들어져 토기굽다리접시[土器高杯]라고 하며, 토기 외에 청동 · 금 · 은기로도 제작되었다. 굽다리접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소멸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백자 · 청화백자 · 목기 등으로 만들어져 널리 쓰였는데, 그 중 목기로 만들어진 것을 목두라고 부른다.

구조 및 형태

목두는 높은 대가 달린 접시 형태로 뚜껑을 덮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목두와 관련된 문헌 기록으로 『석전의(釋奠儀)』에서는 “두(豆)는 나무로 만드는데, 높고 낮은 것과 깊고 얕은 것, 입구의 직경과 다리의 직경이 모두 변(籩)의 제도에 의한다.”고 되어 있다. 또 『이아(爾雅)』에서는 목두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정현(鄭玄)의 주(註)에는 "두(豆)는 젖은 물건을 담기에 알맞고 변(籩)은 마른 것을 담기에 알맞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기록으로는 “왕의 신위를 종묘에 부묘(祔廟)할 때, 목두는 물기가 있는 제수용 제물을 담는 제기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부묘도감의궤(祔廟都監儀軌)』에 남아 있다.

제조 방법

『부묘도감의궤』 등의 기록에 따르면 목두는 주로 피나무와 자작나무로 만들고 표면에 흑칠(黑漆)을 하여 마감하였다.

사용 방법 및 특징

목두는 원래 생활용기이던 굽다리접시가 의기용(儀器用)으로 변모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제사상에 제물을 차릴 때 신위(神位)의 오른편에 놓이는 고기 · 젓 · 국 등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였다. 즉 제기용 목두는 기형은 고대의 굽다리접시와 같으나, 삼국시대 중국에서 유교와 함께 전해져 조선시대까지 흉례(凶禮)와 길례(吉禮)의 의례용 기명(器皿)으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 『석전의(釋奠儀)』

  • - 『이아(爾雅)』

  • - 『부묘도감의궤(祔廟都監儀軌)』

  • - 『朝鮮陶磁名考』(淺川巧, 朝鮮工藝刊行會,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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