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산 낙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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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후기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 구월산(九月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암자.
유적/건물
  • 건립 시기미상
  • 건물 층수단층
  • 규모1동
  • 소재지북한 황해남도 신천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위석 (전 경북대학교, 철학)
  • 최종수정 2026년 0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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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 구월산(九月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암자.

내용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시대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우는 인법당(人法堂) 한 채뿐이지만 구월산에서 가장 경치가 절묘한 곳에 있다. 암자 왼쪽으로 돌아가면 석굴이 있는데, 이곳에는 석불이 봉안되어 있다.

이 석불은 신라시대 이 절 아래의 비산사(飛山寺)에서 수도하던 비산(飛山)이 조각하여 안치하였던 것인데, 고려 말에 비산사가 헐리게 되면서 이 암자로 옮겨온 것이라 한다. 처음에는 암자의 인법당 안에 안치하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뇌성벽력이 크게 일면서 큰 바위가 갈라져 지금의 석굴이 생겼고, 승려들은 이것을 부처님의 뜻이라 믿고 석불을 이곳에 옮겨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이 석불은 영험이 있어서 불운한 사람이 치성을 드리면 반드시 성취되고, 절에서 부정한 언행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 전한다.

석굴 앞에는 밑둥에 도끼질 흔적이 있는 큰 은행나무가 있다. 옛날 욕심 많은 목수가 이 나무를 찍어가려고 도끼질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절 마당 앞 입구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환영암’이라고 새긴 큰 바위가 있으며, 절 동쪽에는 세심대(洗心臺)가 있다.

참고문헌

  • - 『황해도지(黃海道誌)』(황해도,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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