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 ()

목차
불교
인물
조선후기 보시행으로 이름높은 범어사의 승려.
이칭
이칭
낭백(浪伯), 만행(萬行), 수좌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보시행으로 이름높은 범어사의 승려.
내용

보시행(布施行)으로 이름높은 범어사의 승려이다. 낭백(浪伯)·만행(萬行) 수좌라고도 한다. 일찍이 동래 범어사에 출가, 보시행을 발원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재물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모두 보시하였다.

그는 또 동래의 기찰(機察) 도로변에 반송(盤松)을 심고 우물을 파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부산 기장(機張)에 있는 도어령(刀魚嶺, 칼치재)에 오두막을 짓고 짚신을 삼아 행인들에게 보시하였으며, 지금의 동래온천으로 가는 대낫다리 동편의 산기슭에 오이밭을 가꾸어 내왕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일생을 보시로써 일관하다가 마지막으로 늙은 육신까지 보시하고자, 범어사의 성지낙천(聖智樂泉) 울창한 숲에서 3일 동안을 헤매다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보시하였다고 한다. 범어사에는 그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하여온다.

그는 관리들의 사원에 대한 갖가지 횡포가 멈추지 않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입적하기 전에 그가 머물던 방 앞에 ‘문을 여는 사람이 바로 이 문을 닫은 사람(開門者是閉門人)’ 이라는 유필을 남겼다.

그뒤 그는 서울의 재상 조(趙)씨 집안에서 태어나 순상(巡相 : 관찰사)의 지위에 오른 뒤, 다시 범어사로 돌아와 전생의 폐문을 열어 관리들과 민간인의 범어사에 대한 횡포를 몰아냈다고 한다. 범어사에 있는 순상국조공 엄혁거사폐 영세불망단(巡相國趙公曮革祛寺弊永世不忘壇) 비석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 18-범어사(梵魚寺)-(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8)
집필자
김위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