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행(布施行)으로 이름높은 범어사의 승려이다. 낭백(浪伯)·만행(萬行) 수좌라고도 한다. 일찍이 동래 범어사에 출가, 보시행을 발원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재물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모두 보시하였다.
그는 또 동래의 기찰(機察) 도로변에 반송(盤松)을 심고 우물을 파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부산 기장(機張)에 있는 도어령(刀魚嶺, 칼치재)에 오두막을 짓고 짚신을 삼아 행인들에게 보시하였으며, 지금의 동래온천으로 가는 대낫다리 동편의 산기슭에 오이밭을 가꾸어 내왕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일생을 보시로써 일관하다가 마지막으로 늙은 육신까지 보시하고자, 범어사의 성지낙천(聖智樂泉) 울창한 숲에서 3일 동안을 헤매다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보시하였다고 한다. 범어사에는 그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하여온다.
그는 관리들의 사원에 대한 갖가지 횡포가 멈추지 않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입적하기 전에 그가 머물던 방 앞에 ‘문을 여는 사람이 바로 이 문을 닫은 사람(開門者是閉門人)’ 이라는 유필을 남겼다.
그뒤 그는 서울의 재상 조(趙)씨 집안에서 태어나 순상(巡相 : 관찰사)의 지위에 오른 뒤, 다시 범어사로 돌아와 전생의 폐문을 열어 관리들과 민간인의 범어사에 대한 횡포를 몰아냈다고 한다. 범어사에 있는 순상국조공 엄혁거사폐 영세불망단(巡相國趙公曮革祛寺弊永世不忘壇) 비석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