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曺植: 1501~1572)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건중(健中), 호는 남명(南冥)이다. 아버지는 승문원판교 조언형(曺彦亨), 어머니는 인천(仁川) 이씨 이국(李菊)의 딸이다. 25세 때 『성리대전(性理大全)』의 구절에 자극받아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침잠하게 되었다. 이후 평생 처사로서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몰두했고, 학적 명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했다.
만년에 덕산(德山)으로 거처를 옮겨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강학 활동을 했으며, 전국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어 훗날 남명학파(南溟學派)를 형성하게 된다. 선조 즉위 후에는 선조를 위해 「무진봉사(戊辰封事)」를 올려 자신의 경륜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후 영의정에 증직되고 진주 덕천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남명문집(南冥文集)』은 4권 3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목판본이다.
저자 사후인 1604년에 제자 정인홍(鄭仁弘)이 수집하여 목판으로 처음 간행한 이래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재간행되었으며, 대체로 네 차례 정도의 큰 변화를 거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초간본은 현전하지 않고 1606년의 중간본이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등에 다수의 판본이 전한다.
권1은 형식별로 한시를 모아 놓았고, 이외에 부(賦), 명(銘)이 함께 수록되었다. 이 중 백성을 물에 비유하고 임금을 배에 비유하여 민심의 중요성을 읊은 「민암부(民巖賦)」,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마음을 비유한 「신명사명(神明舍銘)」이 저명하다.
권2는 산문 작품으로 서간과 기문, 비지류(碑誌類) 및 기타 잡문이 수록되었다. 주의류(奏議類) 중에서 155년에 올려진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는 당대의 폐단을 조목조목 비판한 작품으로 유명하며, 1568년 즉위 직후 선조를 위해 올린 「무진봉사」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노학자의 충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권3은 부록으로 교지(敎旨)와 사제문(賜祭文) 등 나라에서 내려진 글, 제문과 만사(挽詞) 등이 수록되었다. 권4는 보유(補遺)로, 김우옹(金宇顒)이 지은 조식의 행장(行狀)을 비롯하여 본집에 누락된 조식의 유문(遺文) 등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조선 전기 경상우도(慶尙右道) 사림의 거두였던 조식의 문학과 사상의 전모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그가 당대에 성리학자로서 매우 저명했고, 이후 그의 제자들이 남명학파를 형성하여 조선시대 학문의 전개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만큼, 조선시대 사상 및 학문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에도 반드시 참고할 만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