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영조 11) 작. 종이 바탕에 채색. 세로 7.85m, 가로 4.58m. 1997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씨(李氏)와 상궁(尙宮)이 1735년 1월에 돌아가신 영빈 김씨(寧嬪金氏)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같은 해 9월에 발원하여 조성한 것이다. 영빈 김씨는 숙종의 제4후궁으로 소생이 없으며, 묘소는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 있다.
각총(覺聰) · 칠혜(七惠) · 두계(斗系) · 태운(太雲) · 갈빈(葛彬) 등 5명의 도화원(都畫員)이 그렸다. 칠혜는 서울 학림사 소장 비로자나삼신불괘불탱(1715-1774년: 原 양주 수락산 내원암 소장)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삼신불입상의 도상은 이 괘불탱을 중심으로 18-19세기 서울, 경기지역에 성행한다.
상단에는 비로자나삼신불입상을, 하단에는 조그맣게 묘사된 6대보살 ·10대제자 · 범천과 제석천 · 주악(奏樂) 천인상 등이 나타난 삼신불괘불탱이다. 가슴 앞에서 오른손이 왼손을 감싸 쥔 지권인(智拳印)의 손 모양을 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보관(寶冠)을 쓴 설법인의 노사나불, 우측에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석가불이 배치되었다.
비로자나불은 둥근 얼굴에 올라간 눈과 쳐진 눈썹, 단아한 코와 작은 입이 묘사된 근엄한 얼굴에, 두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복부 원형 장신구가 강조된 보살형 노사나불의 천의(天衣: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의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 등에서 보살상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석가불은 오른손을 복부에 위치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댄 특이한 손 모양이다.
구름으로 구획된 하단부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6대보살이 좌 · 우로 배치되었다. 일반적으로 상단부에 표현되는 10대제자 · 범천과 제석천 · 용왕(龍王)과 용녀(龍女) 등이 하단부에 배치된 점이 특징적이다. 특히 하단 중앙에 춤추는 인물 및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 천인상이 구름 속에 묘사된 장면은 불화에서는 드문 예이다.
삼신불입상이 크게 표현된 이 괘불탱은 종이 바탕에 묵선(墨線)과 채색 선이 병용된 가벼운 색상에, 황색의 필선이 금니(金泥)를 대신하고 있다. 밝은 갈색의 바탕색에 부드러운 홍색과 녹색 위주로 채색되었다. 그리고 요철법(凹凸法)이 감색 옷자락에서 두드러진다. 왕실의 명을 받은 상궁 이씨가 영빈 김씨의 영가천도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이 삼신불괘불탱은 당시 삼신불 신앙의 성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