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길재(吉哉), 호는 태화자(泰華子). 서울 출신. 증조할아버지는 대제학 남용익(南龍翼)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남정중(南正重)이고,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남한기(南漢紀)이며,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郎) 심한장(沈漢章)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가 되고, 1727년(영조 3) 성균시에 장원,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 장명유생(將命儒生)이 되고, 그해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춘추관기사관으로 『숙종실록(肅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실록랑(實錄郎)을 이어 수찬·이조정랑을 지냈다.
1728년 소론(少論)의 영수인 이광좌(李光佐)를 배척하다가 당론을 일으켰다 하여 동료 신만(申晩) 등과 함께 영암에 유배되었다. 그 뒤 곧 풀려나와, 그해 병으로 일찍 죽었다. 재주가 높아 시문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뒤에 홍문관부수찬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태화자고(泰華子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