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실록랑, 수찬,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길재(吉哉)
  • 태화자(泰華子)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의령(宜寧)
  • 사망 연도1728년(영조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정랑
  • 출생 연도1696년(숙종 22)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태화자고 미디어 정보

태화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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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실록랑, 수찬,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길재(吉哉), 호는 태화자(泰華子). 서울 출신. 증조할아버지는 대제학 남용익(南龍翼)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남정중(南正重)이고,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남한기(南漢紀)이며,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郎) 심한장(沈漢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3년(숙종 39) 진사가 되고, 1727년(영조 3) 성균시에 장원,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 장명유생(將命儒生)이 되고, 그해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춘추관기사관으로 『숙종실록(肅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실록랑(實錄郎)을 이어 수찬·이조정랑을 지냈다.

1728년 소론(少論)의 영수인 이광좌(李光佐)를 배척하다가 당론을 일으켰다 하여 동료 신만(申晩) 등과 함께 영암에 유배되었다. 그 뒤 곧 풀려나와, 그해 병으로 일찍 죽었다. 재주가 높아 시문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뒤에 홍문관부수찬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태화자고(泰華子稿)』가 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뇌연집(雷淵集)』

  • - 『월곡유집(月谷遺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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