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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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漢城)에 설치되어 있던 실록보관 창고.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순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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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한성(漢城)에 설치되어 있던 실록보관 창고.

내용

사마천(司馬遷)의 “원본은 명산에, 부본은 서울에 보관한다.”라는 서적보관법에서 연원하여, 고려시대 이래 서울에 내사고, 지방에 외사고를 두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조선시대 내사고의 기능은 춘추관에서 겸임하였으므로 춘추관고가 곧 내사고이다. 그러나 내사고는 외사고의 상대개념으로 춘추관고에 비하여는 포괄적인 일반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내사고에는 실록과 『선원록(璿源錄)』이 필수적으로 보관되는 외에 일반 시·문집류들도 상당수 보관되었다. 외사고의 경우는 조선 초기 충주·성주·전주 세 곳에 있었으며, 인조 대 이후로는 정족산(숙종 대 이전에는 마니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사고에 각가 1부씩 보관하였다.

참고문헌

  • - 『눌재집(訥齋集)』

  • - 「이조실록(李朝實錄)의 성립(成立)에 취(就)하여」(이재욱, 『향토(鄕土)』1―1·2, 1946·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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