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의 “원본은 명산에, 부본은 서울에 보관한다.”라는 서적보관법에서 연원하여, 고려시대 이래 서울에 내사고, 지방에 외사고를 두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조선시대 내사고의 기능은 춘추관에서 겸임하였으므로 춘추관고가 곧 내사고이다. 그러나 내사고는 외사고의 상대개념으로 춘추관고에 비하여는 포괄적인 일반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내사고에는 실록과 『선원록(璿源錄)』이 필수적으로 보관되는 외에 일반 시·문집류들도 상당수 보관되었다. 외사고의 경우는 조선 초기 충주·성주·전주 세 곳에 있었으며, 인조 대 이후로는 정족산(숙종 대 이전에는 마니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 사고에 각가 1부씩 보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