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성격의 내금위(內禁衛)가 먼저 설치되어 있었으나, 인원이 부족하다 하여 1409년(태종 9)에 새로 내시위가 구성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120인으로 40인씩 세 번으로 나누어 숙위하였는데, 각 10인마다 총제(摠制) 1인이 절제사로서 통솔하였으며, 삼군(三軍)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러 면에서 내금위와 기능이 유사하여 ‘내금내시위’로 통칭되다가 1424년(세종 6) 내금위에 통합되었다.
이들은 같은 시위군인 충의위(忠義衛)·별시위(別侍衛) 등과 비교할 때 그 서열이 첫째였기 때문에 선발기준이 몹시 엄격하였다. 즉, 탁월한 무예와 확실한 신분이 필수불가결한 선발요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