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991년(성종 10)경, 거란(契丹)이 압록강 가에 쌓은 성곽.
건립 경위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를 보면, “내원성은 정주(靜州)에 있다. 즉 수중지지(水中之地)이다. 적인(狄人)이 내투(來投)하면 이곳에 두었는데, (따라서) 그 성을 내원(來遠)이라 이름하였다. 노래로 기록한다.”라는 내용이 전한다. 이를 통해, 내원성은 정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물 가운데 땅(수중지지)’라는 표현을 통해 섬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진서는 『해동역사속(海東繹史續)』에서 “정주는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이다. 그런즉 압록강 가운데 있는 검동도(黔同島)나 위화도(威化島) 등이 생각건대 옛 내원현인 듯하다.”고 하였으며, 정약용도 “내원성은 물 안에 있음은 명확하다[來遠城明在水中].”라고 하여 압록강 안의 섬이라는 견해에 힘을 실어 줬다. 일본인 학자들도 한진서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정주가 의주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 ‘수중지지’라는 점과 조선시대 사행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점을 들어 사행로상에 위치한 검동도로 비정하였다. 이후 이 견해는 별 이견 없이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변천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해동역사속(海東繹史續)』
- 『강역고(疆域考)』
논문
- 박윤미, 「고려의 보주 수복과 고려-금 간 외교교섭」(『한국중세사연구』 51, 한국중세사학회, 2017)
- 정동훈, 「고려-거란 관계에서 세 층위의 소통 구조」(『역사와 현실』 107, 한국역사연구회, 2018)
- 津田左右吉, 『朝鮮歷史地理』 卷2(南滿州鐵道株式會社, 1913)
- 松井等, 「滿洲に於ける遼の疆域」(白鳥庫吉 監修, 『滿洲歷史地理』 2, 丸善株式會社, 1913)
- 池內宏, 『東京帝大文學部紀要 第3 高麗時代の古蹟址』(19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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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려 시대에, 오늘날의 경주인 동경을 다스리던 벼슬. 삼품 이상의 벼슬아치를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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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고려 시대에, 압록강 동쪽, 지금의 의주 지방에 세운 성. 한때 중국 요나라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요나라와 금나라의 교체 시기에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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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중국 북쪽의 야만족.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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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 시대에, 액정국에 속한 종칠품의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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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와서 항복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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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어떤 미상(未詳)의 물체에 대하여 그와 유사한 다른 물체와 비교하여 그 성질을 정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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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중국 금나라 말기의 무장(武將)(?~1233). 동경(東京), 지금의 랴오양(遼陽)에 도읍하여 대진(大眞)을 열었다가 동진(東眞)이라 국호를 고쳤다. 두만강과 압록강의 여진족을 통합하고자 힘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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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경치 좋은 곳에 정자 모양으로 지어 한가히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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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예전에, 우리나라의 북쪽에 살던 여진족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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