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년(영조 6) 홍태유의 아들 홍윤익(洪胤益) 등 3형제가 김창흡(金昌翕)·이일원(李一源)에게 편집을 위촉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의현(李宜顯)·이덕수(李德壽)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다.
5권 3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2에 시 259수, 권3·4에 서(書) 7편, 서(序) 9편, 기 4편, 발 3편, 잡저 11편, 권5에 논(論) 3편, 묘지 2편, 행장 1편, 애사 1편, 제문 5편, 부록으로 유사(遺事)·행장·묘지명·묘갈명 각 1편이 수록되어 있고, 저자의 재종제 홍진유(洪晉猷)의 『애라자고(愛懶子稿)』가 실려 있다.
시는 다양한 체와 기법을 쓰고 있어 평담하고 고상해 당나라 때의 위장과 잠삼의 시풍을 따른 것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사계서(社稧序)」는 마을의 협동체인 계모임에 대해 그 취지와 행사 등의 기능을 설명하면서, 농사나 관혼상제 등에서 한 가족처럼 이웃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조직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지방에서 실제적으로 행하여지던 실태를 알려주는 자료가 된다.
「맹자불존주론(孟子不尊周論)」에서는 맹자가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를 높이지 않은 것은 걸(桀)·주(紂)와 같이 백성을 해치는 임금은 독부(獨夫)이지 왕이 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오직 요순과 같이 선정을 베푸는 임금만이 참다운 왕자라고 주장하였다.
이 밖에도 불도(佛道)를 칭찬하면서 시주하면 복을 받는다고 주장한 「묘련암권선문(妙蓮菴勸善文)」과 한고조가 초왕(楚王)인 한신(韓信)을 회음후(淮陰侯)로 강봉한 사실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비판한 「강봉회음후론(降封淮陰侯論)」은 선비의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문 글에 속한다.